오늘은 우리나라 근대적 여권운동가인 나혜석의 일대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나혜석은 일제강점기였던 근대시기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조작가,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시인이자 소설가라는 화려한 이력을 가진 인텔리여성이었답니다.
나혜석은 1920년에 25세의 나이에 변호사인 김우영과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 키우면서도 자신의 직업인 화가활동을 함께 겸임해나갔습니다.
결혼해 자녀를 양육하면서도 그녀는 결코 붓을 놓지않고, 계속해서 그림그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남편인 김우영과의 사이에 3남 1녀를 낳았던 나혜석은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도 열심히 그림을 그렸고, 개인전시회도 여러번 여는 등 아이들 육아와 화가일을 계속 병립해나갔습니다.
점점 몸과 마음이 지쳐만갔고,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나 자극제가 필요했습니다.
이처럼 나혜석은 일생일대에 여러차례에 걸쳐서 매우 파격적인 발언을 많이해서, 사회적으로 큰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나혜석이 31살이 되던 무렵, 남편을 통해서 그녀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만주 안동부영사로 일하던 외교관이었던 남편 김우영이 유럽과 미국으로 시찰을 떠나게됐고, 나혜석도 남편을 따라서 조선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유럽여행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답니다.
나혜석은 남편과 함께 모스크바횡단열차를 타고 30일간의 기차여행을 거쳐 파리에 도착했습니다.
아뭏튼 나혜석의 수개월에 걸친 파리생활은 그녀로 하여금, 수많은 값진 영감을 얻게하는 계기가 되었고, 화가로서 더욱 도약하고, 발전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에게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답니다.
나혜석은 그녀에게 예술적 발전의 계기를 가져다준 파리생활을 접고, 미국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거쳐서 부산항을 통해서, 6개월 만에 다시 우리나라 입국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녀가 부산 시댁집에 돌아오자 마자, 곧바로 큰 사단이 일어났습니다.
그녀의 남편 김우영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녀에게 이혼을 요구하였습니다.
남편 김우영의 이혼요구는 파리에 머물렀을 무렵에, 나혜석이 최린과 벌인 염문행각 때문이었습니다.
나혜석은 프랑스 파리에서 한창 미술아카데미에 다닐 무렵에, 파리 모처에서 최린을 만나 수십번에 걸쳐서은밀한 데이트를 즐겼습니다.
최린은 우리나라 천도교대표로서, 3·1 운동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명이며, 그당시 유력한 정치인이자 개혁파였습니다.
최린은 1928년도에 프랑스 파리에서 외교관으로 출장을 왔었는데, 마침 파리의 유학생들이 주최한 환영회에 함께 참석한 최린과 나혜석은 서로가 보자마자 서로간에 첫눈에 홀딱 반하게 되고, 두사람은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채 은밀한 사랑에 빠지게된답니다.
프랑스어를 모르는 두사람은 통역관까지 고용해서 레스토랑과 오페라극장, 벳놀이를 하면서 수많은 데이트를 즐겼답니다.
이렇게 나혜석과 최린이 그녀의 호텔방에서 밤을 함께 보낸 횟수가 수십번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 당시 나혜석이 여러명의 남자들과 연애를 한다는 소문이 우리 교포사회에 널리 퍼져있었고,
당시 베를린에 있던 남편 김우영도 이 소문을 듣고 급히 파리에 돌아왔습니다.
파리에 돌아온 나혜석의 남편 김우영은 비밀리에 나혜석의 뒤를 밟았고, 한 호텔방에서 나혜석과 최린이 정사를 벌이는 불륜장면을 목격하게 된답니다.
결국 1930년 11월, 나혜석은 결혼 11년만에 35세의 나이에 이혼을 당하고 집에서 쫒겨나게 된답니다.
그녀는 35년도에 집필한 자신의 자서전 ‘신생활에 들면서’에서 최린과의 불륜에 대해 솔직히 고백하기까지 했습니다.
나혜석과 최린의 불륜사건으로 인해서 나혜석은 그동안 쌓아올렸던 그녀의 예술가로서의 높은 명성이 한 순간에 무너져내려버렸고,
이 사건으로 인해서 그녀의 인생은 한없이 끝도없는 나락으로 추락지고 말았습니다.
나혜석의 불륜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당시 각계각층으로부터 그녀에게 엄청난 비난이 쇄도하였고, 한순간에 나혜석은 음탕하고 부도덕한 여자로 낙인찍히고 말았답니다.
남편과 네명의 자녀까지 둔 유부녀가 외국에서 은밀하게 외갓남자를 끌여들여서 불륜을 저질렀으니,
유부녀의 정조를 중시하던 당시 조선사회에서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었답니다.
나혜석은 불륜으로 인해서 그녀가 평생 쌓아왔던 여성운동가와 화가로서의 명예를 잃게되었을 뿐만아니라, 남편과 자녀들까지도 모두 잃게되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답니다.
그런데, 더욱 웃긴 것은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연인 최린에게도 버림받았던 나혜석은 자신의 불륜상대남 최린을 상대로 '정조유린죄'로 법원에 고소했을 뿐만아니라, 12,000원의 위자료 청구소송까지 추진하게 됩니다.
나혜석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최린은 나혜석의 소송을 중단시키기위해서 2,000원의 돈으로 그녀를 매수하기를 시도했답니다.
나혜석은 1934년도에 잡지 ‘삼천리’에 ‘이혼고백서’라는 글을 올려, 자신의 이혼사실을 세상에 알려서 또한번 큰 파란을 불러일으켰답니다.
1934년에 나혜석이 발간한 이혼 고백서에서, 그녀는 약혼과 결혼, 이혼에 이르렀던 모든 과정과 최린과의 관계에 대해 적나라하게 기록하면서,
불평등한 남녀관계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하였고, 남녀간의 자유연애를 주장하였습니다.
‘이혼고백서’에서 그녀는 자신의 아내, 어머니, 누이와 딸에게는 한없이 순결함을 요구하면서,
다른 사람의 아내나 어머니, 누이, 딸에게는 음탕한 성욕을 품는 한국남성들의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성모랄을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자유연애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이혼한 후, 나혜석은 프랑스 파리에 체류할 때 목격했던 ‘생 제르망 성당문’을 보고서 그림을 그렸는데, 이 그림이 두 번씩이나 미술대회에서 큰 상을 받았답니다.
상을 수상하면서 자신감과 삶의 용기를 얻은 그녀는 이듬해에 금강산에 머물면서 30점이 넘는 그림들을 그리면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벌여나갑니다.
그렇지만, 그 후 나혜석의 집에 큰불이 나서, 그녀의 보물이나 마찬가지인 그녀의 그림들이 모두 불에 타서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모든 그림들이 불이 나는 바람에 전부 불에 타서 없어지고 말았답니다.
이제 그녀는 모든 것을 잃고, 완전 빈털터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화재사고로 인해서, 나혜석은 엄청난 충격을 받고, 병을 얻어서 병석에 눕게 된답니다.
화재로 자신의 모든 그림들을 잃게된 나혜석은 없친데 덮친 격으로 파킨슨씨 병까지 걸리는 큰 불행이 닥쳐와서, 점점 사회생활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나혜석이 다시 그린 그녀의 그림들이 조선미전에서 혹평을 받으면서 그녀는 더욱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녀는 급기야 가족과 친지들로부터 외면을 당했고, 그녀의 마지막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였던 오빠의 경제적 지원이 끊어지면서, 그녀의 생활은 매우 힘들어지게되었습니다.
자신을 찾아온 학생들에게 유화를 가르치면서 간신히 생계를 이어나갔습니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된 나혜석은 1944년도에 인왕산에 있는 청운양로원에 들어가서 은거했으나,
1945년도에 50세가 되면서 지병인 파킨슨병이 더욱 악화되면서, 정신이상 증세까지 보이게 됩니다.
그 후, 정신이상 증세가 심하다는 이유로 양로원에서 쫒겨난 나혜석은 이후에 병원과 보육원, 산사를 오가면서 3년동안 방랑생활을 해오다가,
병세가 더욱 심해진 1948년도에 서울 시립자제원 병동에 입원하였고, 입원한 지 한달만에 무연고자 병동에서 사망하고 말았답니다.
나혜석이 사망하였을 때에, 그녀의 곁을 지키는 가족은 단 한명도 없었고, 그녀는 혼자서 외롭게 고독사하고 말았습니다.
사망 당시 나혜석은 소지품 하나없이 병사하고 말았습니다.
죽기 직전에, 나혜석은 자신의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서 수시로 병원을 뛰쳐나가서 자식들을 만나려고 시도했지만,
전남편 김우영은 경찰을 동원해서 그녀가 자식을 만나지못하도록 했습니다.
사실상 나혜석은 집도 절도 없이 길거리에서 행려병자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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