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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슬프게 별 손창호 당뇨병과 만성신부전증..가족에 의해 버려! 말년이 참 비참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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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jun1989 2021. 3. 1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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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에게 연예인만큼 아름다운 우상은 없다. 눈부신 모습으로 별이 되어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덮쳐오는 불행을 피하지 못하고 시드는 꽃잎처럼 어느날 힘없이 져버린 스타도 많다. 못다 핀 꿈을 안고 일찍 요절한 연예인 중 가장 기구하고 참담한 모습의 잔영을 남기고 사라진 스타가 있다.

탤런트 겸 영화감독 손창호가 하늘로 떠날 때의 처절한 모습은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연예인으로서의 연민을 남겨주었다. 지난 8월 5일이 그가 떠난 지 22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는 1998년에 사망했다.

 

눈을 감기 얼마 전 언어와 뇌 기능을 비롯해 신체 전반이 무너진 황폐한 몰골의 행려병자 모습으로 <병원 24시>라는 TV 다큐프로를 통해 근황이 알려졌다. 그는 버려진 인간의 모습 그대로였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일본 니혼대에서 영화 유학까지 했고, 1970년 MBC 탤런트로 출발해 TV드라마와 수많은 하이틴 영화에서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그가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어느 해 정처를 잃은 행려병자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의 첫 불행은 그가 서른 살 때 찾아왔다. 4살 연하의 예쁜 신부를 만나 결혼식을 올리고 제주도 신혼여행을 다녀올 때만 해도 그는 불행을 예측하지 못했으나 신혼생활 일주일째로 접어들면서 갈등이 일어나고 4개월 만에 결별하는 사태를 맞이했다. 그러나 그 무렵만 해도 그는 젊고 해야 할 일들이 많아 쉽게 상처를 잊을 수 있었다.

짐작컨대 그의 불행의 씨앗은 무리한 영화 연출 및 제작 작업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그가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1990년 영화 <동경아리랑>을 준비할 때 만났다. 시나리오를 들고 필자를 찾아 온 그는 말했다.

 

“일본에서 나운규의 아리랑 정신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자신이 있어요. 그곳에서 공부하며 준비해 왔거든요.”

 

패기가 넘치는 모습으로 영화사 ‘월촌’을 세워 촬영 작업을 하고 어렵게 제작비를 동원해 개봉을 했지만 작품의 좋은 반응을 받아내지 못했다. 결과에 대한 속사정은 알 수 없으나 그는 그후부터 많은 고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줄곧 활동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평소 당뇨와 신부전증의 지병이 있긴 했으나 그렇다해도 그렇게 육신이 무너진 모습으로 나타날 줄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는 90년 감독과 주연을 겸한 영화 ‘동경 아리랑’이 실패한 뒤 당뇨 합병증으로 왼쪽 눈 시력을 잃었고, 3년 전부터는 만성 신부전증으로 고생했다.

서울 적십자병원에 입원, 정부로부터 치료비를 보조받으며 이틀에 한번씩 투석치료를 받아왔다.

 

그는 자신과 의식을 잃어버린 혼미한 정신상태에서 “바다에 가고 싶다”고 중얼거리는 병상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시선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

그리고 얼마 지난 뒤 연예가 뉴스의 한켠에 그의 죽음이 짧게 전해졌다. 마흔여섯에 그는 그렇게 떠났다.

 

당시 한 언론은 이혼 후 어렵게 살다 죽은 손창호를 가족에 의해 버려진 사람으로 보도했다. 이런 악의적인 기사와 루머로 인해 남은 가족들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아픔을 가진 채 살아왔다.

 

98년 세상을 떠난 왕년의 청춘스타 손창호씨의 대를 이어 배우의 길로 들어선 딸 손화령을 만났다.

 

이에 대해 손화령은 "왜곡된 부분이 상당히 많았지만 당시엔 (내가) 어렸기 때문에 정정보도와 같은 별다른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그냥 피하고 숨고 싶었다"며 "이젠 아버지가 돌아가신지도 11년이나 됐고 나도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많이 편해진 상태"라고 운을 뗐다.

손화령은 "예전에 보도가 된대로 우리 가정이 평탄하지 않았던 것은 맞다"며 "아버지는 연기자로선 훌륭한 배우였지만 집안에선 그다지 성실한 가장은 아니었다. 이 때문에 나와 대화할 시간이 거의 없었고 어머니와도 이혼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어 손화령은 "그런 아버지가 솔직히 미웠던 적도 많다. 그래서 부모님 이혼 후엔 거의 연락도 하지 않고 지냈다"며 "이제와 생각해보니 내가 아버지의 삶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일찍 돌아가실 줄 알았으면 매몰차게 대화를 단절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또한 그녀는 "여지껏 활동하며 내가 '손창호의 딸'이라는 것을 잘 알리지 않았다. 어설픈 내 연기로 인해 아버지 연기인생에 오점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며 "이번에 큰 역할을 맡은 만큼 처음으로 아버지의 딸임을 떳떳히 밝힐 수 있었다. 만약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많은 도움을 주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그는 엄마와 고3 수험생인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부터 집안 생계는 어머니 송씨의 몫이었다. 생활이 어려워 단칸방에서 온 가족이 산 적도 있지만 그는 누구한테도 내색해 본적이 없다고 한다.

“학창시절 친한 친구들도 제가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를 정도로 집안 얘기를 잘 안했어요. 뒤늦게 제 사정을 안 친구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서운해할 정도였으니까요. 엄마가 일을 나가셔야 했기 때문에 집안일은 물론이고 아침마다 동생 도시락도 제가 싸 주곤 했어요.”

 

이제 막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으니 의욕도 열정도 넘치는 게 당연하다. 가능하다면 모든 배역에 도전해보고 싶다며 의기충천해 있는 손화령은 연기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영화나 연극무대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한다. 시간날 때마다 극장이나 공연장을 찾는다는 그는 어떻게 하면 맡은 역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고.

 

“당연히 아빠같은 연기자가 되고 싶죠. 하지만 감히 어떻게 아빠와 저를 비교할 수 있겠어요. 아빠는 항상 책을 보시는 분이셨는데 그 학구열부터 제가 못 따라가는 걸요. 바람이라면 저를 그냥 손화령으로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름을 생각하면 유쾌해지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누구를 모델로 삼기보다 스스로 모델이 될 수 있는 배우가 되어야겠죠.”

먼 훗날 연기자로서 안정되면 의미있는 일도 많이 하고 싶다는 손화령. 그는 외모뿐 아니라 살아 생전 남몰래 고아원을 꾸준히 후원하고 어려운 동료를 형제처럼 챙겼다는 손창호씨의 마음까지도 꼭 닮았다.凍

배우겸 감독이었던 손창호씨의 딸인 손화령은 오디션을 거쳐 당당히 연기자로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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