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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김의 처음 밝히는:"이건희 사장랑 간통! 세상 놀라게 사건들!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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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jun1989 2021. 3. 1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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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로비스트 린다김은 여러 가지로 이슈가 된 인물 중의 한 명이다. 린다김은 김영삼 정부 시절 빼어난 미모를 이용하여 군관계자들을 이용해 무기 로비스트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린다김 나이는 1953년 11월 생으로 경북 청도군 출신이다. 린다김 학력은 숙명여자고등학교이며, 로스엔젤레스 JJ그랜드호텔을 운영하기도 했다. 린다김 본명은 김귀옥이다.

 

린다김 젊은시절은 빼어난 미모의 결정채였다. 이국적인 이목구비와 글래머한 몸매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슈가 되었다. 린다김은 고교 2학년이던 1970년 영화 팔도가시나이를 출연으로 교장선생 상경기, 맹물로 가는 자동차 등에 출연을 하여 큰 사랑을 받았다.

그 이후 린다김은 태평양 화장품 전속모델 1호로 선정이 되면서 큰 주목을 받았고 자서전을 출판하는 로비스트로 알려져 있다. 영화배우를 통하여 가수로 데뷔를 했으며, 그리고 로비스트까지... 그녀의 삶은 너무나도 화려했다고 할 수 있다.

 

린다김 연관검색어에 이양호, 이건희 등과 같은 재벌들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이름이 나오는 이유는 린다김의 첫사랑이 이건희라는 이야기가 자서전을 통하여 전해졌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당시 대구 출신의 황태자가 재벌2세인 이건희 회장을 소개해서 만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학교 졸업 후 숙명여고에 입학했어요. 거기를 2학년까지 다녔을 때 운명의 ‘그 사람’을 만났어요.”

​린다 김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아저씨’라고 부르며 따르던 고향 사람이 있었다. 그녀와 열 살쯤 차이가 나는 그 사람은 서른 살 전후한 그 시절에 이미 권부(權府)에 가까이 가 있었다. 린다 김은 그 사람이 후에 ‘떠오르는 태양’ ‘황태자’가 됐다는 표현을 썼다. 아무튼 그 ‘아저씨’는 린다 김을 무척 귀여워해 간혹 불러다가 간식도 사주고 고민도 들어주었다. 문제의 청평유원지로 린다 김을 데려간 것도 그 ‘아저씨’였다.

​“남학생, 여학생, 그리고 어른들이 다 함께 놀러 갔는데, 거기에 아저씨 친구였던 그 사람도 왔어요. 다들 싸갖고 온 도시락이 고만고만했는데 그 사람 것만 마치 궁중음식 같았어요.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생각했지요. 귀공자 타입에, 잘 생겼다기보다는 귀여운 편이었고, 말이 없었어요. 하긴 말이 없기로는 ‘아저씨’도 마찬가지였지요. 하여튼 다 놀고나서 서울로 돌아가는데, 그 때 거기에 온 어른들은 다 자기 차가 있었거든요. 나는 그 사람 차를 타게 됐어요. 그렇게 사랑이 시작된 거지요.”

 

‘그 남자’는 보통 가문의 남성이 아니었다. 대단한 갑부 집안의 2세였다. 기자가 “10대 재벌 안에 들어가는 수준이냐”고 물었더니 린다 김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관계가 깊어지자 그 사람이 제 어려운 처지를 알고는 집을 한 채 마련해줬어요. 차도 사 줬고, 그 차를 몰 기사도 고용해줬어요. 뚝섬에 가서 승마도 많이 했어요. 보석이며 옷도 전부 최고급으로 해주고, 인천 올림푸스 호텔에서 슬로진에 함박스텍도 먹고…. 돈으로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했어요.”

얘기 중 린다 김은 무심하게 “마침 그 사람한테서 처음으로 받았던 선물이 여기 있네” 하며 손을 내밀었다. 장난감 구슬만한 크기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였다. 무려 13캐럿. 모조품이 아니라면 수억 원은 가볍게 넘어설 만한 크기였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꿈같은 나날인데도 린다 김의 생활은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처음 말과는 달리 그 사람이 기혼남임을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또 고등학생 신분에 사실상의 동거를 한다는 것도 정상적인 일은 아니었다. 학업에 집중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소문 때문에라도 계속 전학을 다녀야 했다. 

“아무리 사랑해도 맺어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무척 고통스러웠어요. 당연히 그 사람 집에서는 난리가 났지요. 그 사람 아버지인 ‘회장님’은 계속 헤어질 것을 종용하고. 상황이 힘든 만큼 저도 방황을 많이 했어요. 사랑도 엉망, 공부도 엉망. 나쁜 친구들을 사귀기도 했지요.”

아무튼 여고생의 신분으로 린다김은 재벌2세와 동거를 하면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합니다. 결국 여러번 전학을 다녔고, 결국 고등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도 못했죠.

 

어느날 회장님이 나를 직접 부르시더군요. 갔더니 상당히 많은 돈을 주시는 거예요. 하지만 나는 받지 않았어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죠. 하나는 내가 목숨 걸고 하는 사랑을 돈 따위와 맞바꿀 수 없다는 자존심, 또 하나는 ‘나한테 돈 몇 푼 집어주는 걸로 당신들 마음 편해지는 꼴은 못보겠다’는 독한 마음 같은 거였어요.

 

​그 사람은 계속 내게 조금만 기다려라, 어떤 방법으로든 책임을 지겠다고 매달렸어요. 그런데 난 포기가 상당히 빠른 사람이거든요. 내 성격이 상당히 양면적인데 아주 외향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친구도 많이 안 사귀고, 어디 나가기도 싫어할 만큼 지극히 내향적이에요. 그러니까 외곬이지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니까. 이 사람하곤 안 된다 깨달은 만큼 결단을 내릴 수 밖에요.”

 

​‘회장님의 돈을 거절한’ 그녀의 행동이 당시 상류사회에서 상당한 화제거리가 됐던가 보다. 그 시절 린다 김은 ‘애인’과 함께 고위 인사들이 참여하는 파티며 모임에 자주 참석했었다. 그 자리에서 박정희 정권 이후 국내 정계를 주름잡아온 인물 대다수와 안면을 텄다.

​그 때 쌓은 몇몇 인사들과의 친분은 린다 김이 로비스트 생활을 시작하고 지금의 명성을 쌓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아무튼 당시 그녀를 알던 사람들은 린다 김이 회장의 돈을 거절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어린애가 참 당차다”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린다 김은 그 때 보여준 강단 있는 모습 때문에 ‘어르신’들이 자신을 더 눈여겨본 것 같다고 말했다.

 

린다 김이 로비스트가 된 이유에 대해 전해지고 있는 것이 남자친구 집안의 반대로 결혼에 실패해,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와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린다 김은 친구 아버지가 주최한 무기상들의 파티에 도우미로 일하게 되면서 로비스트로 활동하며 학교를 중퇴해 성과급 형태로 엄청난 수입을 얻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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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김 남편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린다 김은 지난 1979년 미국에서 김모씨와 결혼식을 올렸으나 2년 만에 이혼을 했다고 한다. 이후 로비스트로 더욱 활약을 집중했다고...

 

린다김은 TV조선 대찬인생에 출연을 하여 당시의 무용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카지노 도박 논란과 필로폰 투약 혐의로 논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충남지방경찰청을 통하여 린다김이 구속이 되었다. 린다김의 혐의는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이다. 린다김은 올해 6월부터 9월 사이 서울 강남 본인의 집에서 커피에 필로폰을 수차례 타 마시는 수법으로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이 다른 마약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린다김의 필로폰 투약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나섰고, 긴급히 체포되었으며 구속이 되었다. 마약 투약혐의는 보통 판매책이 잡힐 경우 판매한 대부분의 사람이 잡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나중에 잡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어 “린다김이 범행을 시인하고 있지만 투약한 필로폰 양이 적지 않고 과거에 집행유예로 처벌받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한편, 린다 김은 지난해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등 전 정권 인사들과 친분을 과시했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한때 국방장관에게 ‘사랑한다’는 표현까지 들어간 러브레터 까지 받은 여인 입니다. 한때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그녀.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으나, 그녀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있는 컨설팅 회사의 대표 명함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린다김의 인생이 화려하기만 할것 같아도 아주 치열했다는걸 알 수 있는것이, 그녀가 10년이 넘게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는것 입니다.

 

 린다김은 지난 이명박 정권에서도 한번 이슈가 되었었죠. 이명박이 무기구매에 있어서 리베이트만 없어도 국방예산이 20퍼센트 감축가능하다고 이야기 하면서 한번 린다김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린적이 있습니다.

 

린다김이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KF-X) 사업에서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미국 보잉사 대신 록히드마틴사의 F-35A가 선정되도록 개입했다는 것이다.

 

린다김은 과거 2015년 12월 15일 인천 영종도의 한 카지노 호텔 방에서 관광가이드 정모(32)씨로부터 5000여만원을 빌린 뒤 갚지 않고 오히려 협박한 혐의도 받았다.

린다김은 이틀 뒤인 같은 달 17일 정씨에게 '5000만원을 더 빌려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호텔 방에서 뺨을 때리고 욕설한 혐의로 피소됐다.

 

린다 김의 애틋한 모성애와 딸을 위한 사랑이 커, 딸 김지선을 영화배우로 데뷔시키기 위해 힘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신상옥 감독에게 부탁을 하면서 딸 김지선을 데뷔 시키려고 했으나, 신상옥 감독이 작품활동을 그만 두면서 데뷔도 힘들어지게 되었다는 후문도 들리고 있습늬다!!

 

린다 김의 두 딸은 빼어난 미모와 요가스튜디오를 운영할 만큼 몸매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린다 김은 첫째 사위가 연방검사, 둘째 사위는 변호사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특히 린다 김의둘째 사위가 케네디 가문의 사람이라고 한다.

 

 두 사람은 3년 동안 캠퍼스 커플이었는데 남자 집에서 3년을 반대했지만 결국 양가를 설득해 결혼했다고 한다.

 

로비스트로 한 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린다김. 그러나 그녀의 말년은 너무나도 험난하고 좋지 않은 이야기만 가득한 것 같다. 린다김이 자신이 지은 죄를 달게 받고 나오길 바라며, 두 번 다시 이런 나쁜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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