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정소녀 고백 "가봉 대통령의 아이 낳았다 그 남편과 이혼했다...인생 다잃어"

Star

by yajun1989 2021. 3. 18. 09:35

본문

반응형

배우 정소녀가 과거 자신이 흑인 아이를 임신했었다는 루머에 대해 입을 열었습니다.

방송에서 정소녀는 “정말 말도 안되는 루머 때문에 하차하게 됐다”며 “방송국에서 ‘왜 저런 여자를 MC로 쓰느냐’고 항의전화가 왔고 하루아침에 MC 교체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알고보니 내가 대통령의 아이를 가졌다는 소문이었다. 가봉 대통령의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에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생각이 들어 힘들었다”며 당시를 회고했습니다. 이에 허참은 “내가 항상 같이 방송을 했는데 배부른 적도 없이 어떻게 낳을 수 있나”라며 거들었습니다.

 

참고로 정소녀 루머에 연루된 가봉대통령 봉고는 1975년 7월 처음 방한합니다.

(박정희가 봉고를 국빈으로 초대함)(참고로 봉고는 가봉 대통령에 40년 이상 집권했고, 150명이 넘는 자녀들을 가지고 있는 독재자임)

 

이후 봉고는 3번 더 한국에 오게 됩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제 3세력(아프리카, 아시아 등의 민주주의나 공산주의 국가가 아닌 국가들)과 외교적으로 가깝게 지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죠.

 

그 소문이 사실인지, 또 어떻게 해서 그런 악성 루머가 생겼는지 궁금하네요.

정소녀는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고 자신감도 떨어졌다. 세상 사람들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일까 너무나 두려웠었다"면서 "누가 던진지도 모르는 이유없는 돌팔매에 맞아 상당히 힘들게 살았다. 모든 것을 다 잃었었다"며 힘들었던 속내를 털어놨습니다.

 

한편 정소녀는 70년대를 풍미한 여배우로 7년간 ‘가족오락관’의 MC 자리를 지키며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루머 의혹으로 인해 자리를 하차한 바 있습니다.

 

정소녀: "해명을 했지만, 그래도 (루머를) 믿으려고 안하는 사람들을 제가 어떻게 붙잡고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나가면 어떤 사람들은 '깜둥이 엄마'라고 그랬다. 너무 화가 나서 죽을 거 같았다."

현재까지도 정소녀 루머의 출처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또한 한국이나 가봉에서도 정소녀의 핏줄이 나타나지 않고요.

 

 가봉 교민들이나 혹은 가봉 권력층에 가까운 사람들(예를 들어서 1986년부터 가봉 봉고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역임한 박상철) 등은 정소녀의 흑인 아이 출산설을 전혀 믿지 않습니다.

 

가봉에서도 증거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죠.

...

사실 정소녀 전남편 집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죠.

 

또한 정소녀를 둘러싼 다른 사건 역시 궁금하네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소녀 집안은 보수적이었습니다.

 정소녀 어머니: "돌아가신 남편이 헌병 대장 출신인데 얼마나 엄했는지 아는가. 애정(정소녀의 본명)이는 이 소문을 듣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연예 활동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갑자기 심장병도 생기고 얼굴에 심하게 부기가 오르는 등 병도 많이 얻었다."

 

 정소녀: "아버지가 군인 출신이었다. 헌병 대장이었던 아버지가 굉장히 무서웠다. 내가 큰 딸이었는데 엄한 아버지 밑에서 예절교육을 철저하게 받았다. 회초리로 많이 맞았고 부모님 앞에서 무릎 꿇고 혼난 적도 많았다."

 

 정소녀: "내가 연예인이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무용가였던 어머니의 끼를 물려받았다. 전역 후 아버지가 스웨덴 대사관 근무로 외국 생활을 했는데 사고방식이 많이 개방적으로 바뀌었다."

 

정소녀: "나같은 행운아도 없을 것다. 데뷔 이래 탄탄대로를 걸었고 CF 출연 후 인지도는 급상승했다. 몸값도 다른 연예인들과 몇 배 차가 났다."

 

 정소녀: "전성기 시절 CF 1회 출연료로 2~3천만원을 받았다. 다른 연예인들이 몇 십만원을 받은 것에 비하며 엄청나게 많은 액수였다. 지금의 돈으로 환산하면 집 10채를 구입할 수 있는 돈이었다."

 당시 한 편의 드라마 출연료가 겨우 몇 십만원하던 시절이었죠.

 

정소녀: "저도 정확하게 광고 출연료를 따져보지는 않았어요. 한 해 동안 CF 출연료로 3천7백만원 정도 받았던 거 같아요. 요즘 화폐가치로 따지면 한 80억~90억원이나 된다고 하네요. 덕분에 기네스북에 올랐고 피어리스 화장품 등의 광고도 ‘대박’이 났죠."

 

 확실히 정소녀의 광고 출연료는 그 당시 여자 연예인들의 몇배가 넘었습니다.

 

정소녀는 왜 이렇게 높은 출연료를 받았을까요?

 

 바로 정소녀가 연기자 출신 최초의 여자 전문 MC 영역을 개척하면서, 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소녀: "당시 오락 프로그램 대명사였던 ‘쇼쇼쇼’로 진행자 데뷔를 했어요. 제가 자리를 잡은 몇 년 후부터 여성 MC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죠. 저한테는 큰 행운이었어요. 연기도 그렇지만, 진행이 적성에 더 잘 맞았거든요."

 

여자 MC가 되면서 정소녀는 사실상 만능 엔터테이너의 원조가 됩니다.

연기자, MC는 물론 1977년 최병걸과 함께 '그 사람'을 불러서 가수로도 활동을 했지만, 정소녀가 가장 각광을 받는 분야는 진행이었습니다.

 

 정소녀: "당시는 사회자는 무조건 아나운서가 하는 줄 알던 시절이었어요. 젊고 겁 없는 20대 초반이었으니까 MC가 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했어요. 일이 좋아서 마냥 행복했지요. 세상에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던 때였어요."

 

정소녀: "전성기 시절 바쁜 스케줄 탓에 이성과 만날 기회가 없었다. 당시 몇 년 만에 찾아온 학교 동창과 만나게 됐고 2,3 번 만난 동창에게 프러포즈를 받아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결혼을 하게 됐다."

 정소녀 전남편 직업은 사업가(여의도에서 의류수출업체를 경영)였고, 고향은 제주도였습니다. 원래 제주도 병원 원장의 아들이었죠.

 

정소녀는 결혼 이후 잠정 은퇴를 합니다.

 

이 기간중 약 4개월간 제주도에서 시집살이도 하고, 이후 서울에서 신혼 생활을 하게 되죠.

 

하지만 5년 후 정소녀는 이혼을 하게 됩니다.

 

 정소녀: "남편이 빚 때문에 외국으로 나가게 됐고 5년 동안 방송 활동을 하며 남편을 기다렸지만 돌아온 것은 남편의 일방적인 이혼 서류였다."

정소녀: "사업에 실패한 남편이 미국으로 건너간 뒤 결국 돌아오지 않았어요. 버림받은 거죠. 많이 힘들었어요."

 

 이후 정소녀는 딸을 키우며 친정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됩니다.

 

"세간에는 아직까지 '정소녀가 흑인을 출산해 그 남편과 이혼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정소녀는 흑인을 낳지 않았다."



또한 한국에서는 정소녀의 전 시누이가 인터뷰를 하기도 합니다.

 

A씨: "난 정소녀가 흑인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의 시기에 같이 살았다. 정소녀가 흑인을 낳았다면 내가 모를 리가 있겠는가. 개인적으로 정소녀가 오빠와 이혼했기에 이제 나와는 남이다. 하지만 같은 여자로서 30년 넘게 악소문에 시달려온 정소녀가 너무 불쌍하다."

 

A씨: "우리 집안과 연관된 것이라 나도 그런 소문 때문에 힘들었다. 정소녀는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이제 실체도 없는 그 쾨쾨 묵은 소문은 자취를 감춰야 한다."

 

 확실히 이제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전 시누이가 이런 인터뷰를 할 정도라면, 정소녀의 결백을 믿어야 할 것 같네요.

 

그렇다면, 정소녀에게 왜 이런 악성 루머가 생긴 걸까요?

 

아마도 정소녀의 경쟁자쪽에서 정소녀가 차지했던 '여성 전문 MC'를 노렸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다른 연예인들에 비해 출연료가 수배, 수십배를 더 받을 수 있는 좋은 이미지 메이킹 자리였기 때문이죠.

 

 당시 정소녀 후임 MC로 들어가기 위하여 굉장한 경쟁이 벌어졌다는 것은, 연예계의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마 당시 권력층의 부패와 '성 접대 문화'에 대하여 반감을 가진 일반 대중들이 '정소녀 루머'를 너무나 쉽게 믿었던 것이 아닐까 하네요.

 

 결국,

 

-> 루머를 믿은 일부 대중이 방송국에 대한 항의 전화

 

"가족들이 다같이 보는 가족오락관에서 왜 그런 여자를 MC로 쓰냐?"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