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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자씨는 인간이아니다! 어찌자식을버리고 자기행복을위해서만? 딸이 무슨죄가있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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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jun1989 2021. 3. 2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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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자(李美子, 1941년생. 19세에 공식 데뷔)는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2살에 아버지를 잃고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어머니와 떨어져서 외할머니댁에서 자란 그녀는 왜 노래를 불렀을까? 아니, 어떻게 노래를 부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어려운 상황을 잊을 수 있는 방편으로 노래를 불렀을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건 타고난 본성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어떤 문화인류학자는 인간이 노래를 하는 이유를 공작새 수컷의 꼬리 깃털이 화려한 것처럼, 일종의 성선택sexual selection , 性選擇이라고 주장한다.



사실이 무엇이던, 그녀는 어려서부터 노래를 불렀고, 전 국민이 어려움을 겪던 1950년대에 직업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녀의 별명인 엘레지의 여왕은 슬픈 노래-悲歌의 여왕이라는 뜻이다. 1967년 발표한 박춘석의 곡 <엘리지의 여왕>이 히트하면서 얻은 별명이지만, 그녀는 가요계 최정상에서 전설의 명예를 얻었지만 동시에 항상 비가悲歌와 함께 한 삶을 살았다.



데뷔 초기엔 기록적인 음반판매로 부와 명예를 한 손에 쥐었지만 발표하는 곡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고 그 족쇄는 20년이 지난 1987년에야 풀리게 된다.




1964년에는 《동백아가씨》를 불러 국내가요사상 최초로 가요프로그램에서 35주 동안 1위를 기록, 25만 장이란 엄청난 음반 판매고를 올리며 집과 전화 그리고 자동차를 장만할 만큼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미디어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던 당시에 25만 장의 음반판매는 사실 설명하기조차 어려운 엄청난 성공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이혼과 대부분의 히트곡들이 금지곡이 된 현실 속에서 이미자는 가수생활을 그만둘 생각까지 하게된다.




그리고 첫 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딸과의 아픈 이별. 

그리고 1964년 8월 25일 딸 정재은을 낳습니다.




하지만 곧 이미자는 가출을 해서 집을 나가게 되죠(이미자 가출 사건).
남편 정진흡의 폭력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정재은은 아버지 정진흡의 손에서 키워지는데, 정진흡은 문제가 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후에 딸 정재은에게 막대한 빚을 남기고 일본으로 도망가서 살게 됩니다.


이미자의 딸 정재은은 엄마만큼이나 어려운 삶을 살게 된다. 아버지와 함께 살던 정재은은 7살부터 악단에서 노래를 불렀다. 엄마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가수로 인정받던 그녀는 엄마처럼 빠른 결혼과 빠른 이혼을 하게 되고, 아버지의 큰 빚을 떠안으며 큰 시련을 겪는다.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엔카 가수로 활동을 한다. 어머니와 가족으로 살 기회조차 없었던 딸이 이미자의 인생에 또 하나의 비가로 남게 된 것이다.



이미자의 딸이자 가수인 정재은이 그 동안 단 세 번뿐이었던 어머니와의 만남을 공개했다고 하는데요.



부모님의 이혼 후 줄곧 아버지와 생활해오던 정재은이 7살 무렵, 외할아버지가 아버지 몰래 어머니의 집에 데려가 사흘 동안 지냈던 것이 그녀와 어머니의 첫 번째 만남이었다. 이미자는 어린 딸에게 “재은아, 엄마랑 같이 살래?”라고 물었고 정재은은 “엄마는 나 없어도 괜찮지만 아빠는 나밖에 없잖아. 아빠하고 살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수년이 흐른 후 모녀 이미자-정재은의 두 번째 만남은 1987년 외국 공연을 가던 김포공항에서 이루어졌다. 이미자를 발견한 전영록이 “저쪽에 너희 어머니가 계신다. 가 인사드려라”고 알려줬고 정재은은 어머니에게 다가가 ‘저예요’ 라고 말을 건넸다고 하는데요. 


당시 정재은은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이혼했던 상태. 이미자는 그런 딸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잘 살지 그랬니...”라는 말을 남겼고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둘을 그렇게 또다시 헤어지고 말았다고 하죠. 그리고 그 후 약 10년이 지나 한 스포츠센터에서의 세 번째 우연한 만남을 가졌다. 

정재은은 어머니 이미자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서이었는지 이미자는 아무 말도 없이 딸을 바라만 봤다고 하는데요. 정재은은 “세 번의 우연한 만남 동안 이미자에게 ‘어머니’라고 부르지 못했다”며 “유명한 연예인인 어머니이기에... 



그리고 자신도 어머니와 같이 이혼한 경험이 있었기에 더욱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털어놨습니다. 이어 정재은은 “나로 인해 어머니에게 상처가 될까봐 어머니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며 어머니를 걱정했다고 하는데요. 



이미자딸 정재은은 지난 1980년대 ‘항구’로 국내에서 인기를 얻은 후 1999년 일본으로 건너가 엔카계의 새로운 여왕으로 급부상했던 트로트계의 한류주자다. 이미자딸 정재은은 지난 2006년 일본에서 발매한 싱글 ‘이젠 내가’의 수록곡 ‘애원’(일본명: 러브스토리를 다시 한 번 ラブスト?リをもう一度)으로 일본 유선방송에서 


청취자들의 리퀘스트 횟수로 순위를 결정하는 USEN 종합순위 1위에 등극한적 있었다고 하는데요. 설운도가 작곡을 맡았던 ‘애원’은 일본 관동지역 중부지역 킨키지역 큐슈지역 등에서 1주간 각 300회에서 700회 가량의 리퀘스트를 받아 전국적으로 사랑받던 상황. 

이미자딸 정재은 특유의 투명하고 청량감 넘치는 목소리와 애상적인 가사가 일본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하는데요. 이와 관련해 이미자딸 정재은은 지난 2008년 방송된 SBS ‘이재룡 정은아의 좋은아침’에서 “일본에선 CD를 사야 나와 악수가 가능하다”라는 



너스레로 인기를 넌지시 언급하며 “도쿄돔에서 공연을 해보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후 이미자딸 정재은의 ‘가라스노 도쿄타워’(유리의 도쿄타워)가 2주 연속 일본 USEN 엔카 차트 주간 1위를 차지하는 등 정재은은 친어머니 이미자에게 물려받은 재능을 타국에서 마음껏 펼쳤습니다. 



아무튼 첫번째 남편과 이혼한 이미자는 1970년 당시 KBS 피디였던 김창수와 재혼하게 됩니다(김창수 역시 재혼이었고, 전처와의 사이에 딸 두명이 있었음).

이때부터 이미자는 바깥에서는 매우 화려한 가요계의 여왕, 엘리지의 여왕으로 활동하지만, 집안에서는 헌신적인 아내와 엄마로서의 삶을 삽니다(이미자 배우자).


이미자: "무대에 서 있을 때는 가수이지만, 집 문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가정주부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고 생각하고 바깥 일은 모두 잊어버린다."


이미자: "내가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우리 남편'이라고 말하는 것도 싫다. 우리집 양반, 우리집 주인이라고 말한다."


이미자: "이런 얘기를 하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지만 가정에서는 남편 다음이 나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떠 드리고 외출하실 때 와이셔츠부터 양말까지 전부 챙긴다. 식사는 손수 만들어서 갖다 드리고 저녁에 들어오실 때도 미리 준비 해 놓는다."


이미자 사위: "(장모님은 유교적 가풍이 강한 광산 김씨 종가댁 외며느리로서) 1980년대 중반까지 시부모님을 정성을 다해 모셨고, 그 당시 수많은 손윗 친척들이 찾아올 때마다 맷돌에 녹두를 직접 갈아 빈대떡을 빚어 손님들을 대접했다."

가히 조선시대 여인으로 보일 정도네요. 오늘날의 남녀 평등적인 관점에서 보면, 부인과 며느리가 아니라 하녀나 몸종처럼 행동하는 것 같습니다.



남편의 폭력 등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미자는 가출을 했고, 곧 이지환과 동거하게 됩니다(이지환의 직업은 다이아몬드쇼 단장, 이미자 불륜 외도). 하지만 결혼을 약속했던 이지환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다가 구속됩니다(혼인빙자간음죄와 폭행죄 등). 다른 연예인들에게도 폭력을 휘둘러서 이에 대한 죄값도 치르게 되죠.



이미지와 정진흡, 그리고 이미자와 이지환 사이의 잘잘못을 정확하게 가리는 것은 어렵지만, 어쨌든 당시 이미자는 인기 가수였던데에 반하여, 이렇게 이미자의 이미지는 굉장히 좋지 않았습니다. 결국 김창수 집안에서는 이미지와 김창수의 결혼에 대해서 반대가 심했죠.



이미자는 지금 행복할까요? 아니면 불행할까요?
외부에서 보기에 반평생동안 그런 생활을 해온 그녀가 불쌍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본인 스스로는 굉장히 만족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스캔들을 일으켰고, 지금의 남편과도 어렵게 결혼한 이미자였지만, 지금은 그녀의 바람대로 가정도 화목하고 자신의 일(가요계)에서도 전설로 남아 있으니까요.



2천 곡이 훨씬 넘는 곡을 취입한 엘리지의 여왕 이미자.

아마도 언젠가는 이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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