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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배우 전계현 안타까운 소식...향년 82세. 고 조경철 박사의 부인~아폴로박사로 유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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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jun1989 2022. 8. 19.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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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원로 배우 전계현씨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원인으로는 오랫동안 앓아오던 질병 때문에 결국 별세를 했다고 합니다. 여러가지로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전계현은 1936년생으로 향년 82세입니다.

 

충청남도 공주시 출신으로 공주여자사범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최초의 TV탤런트 출신 영화배우로서 원래 탤런트로 데뷔를 했다가

영화 1958년작 어디로 갈까로 데뷔를 하며 다음 해 가는 봄 오는봄으로 메가히트를 하면서

 

인기를 얻으나 그 이후로는 뚜렷한 활약이 없습니다.

 

 이어 1960년엔 질투, 63년엔 단종애사에 출연을 하지만 전계현은 이전만큼 파급력을 보여주진 못합니다.

 

그러다 1968년에 미워도 다시한번이란 작품으로 주연급조연으로 좋은 활동을 합니다.

당시에 이미 한번의 이혼을 했던 전계현인데 미워도 다시한번 이란 작품을 보고 조경철 박사가 반해서 결혼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전계현의 역할은 주로 첩이나 애인을 뺴앗긴 부인 역이였습니다.

 

20대부터 맨발의 청춘에서 엄앵란, 문희에게 신성일을 빼앗기고 이후에도 계속 그런패턴이네요.

 주로 조연으로 나오기는 했으나 그녀가 나온 많은 작품들이 히트를 치면서 흥행의 아이콘이 됩니다. 근래로치면 천만요정 오달수정도겠네요.

 

그녀는 1956년에 연극배우로 데뷔를 해 데뷔 15주년 후인 1972년에 배우생활을 은퇴합니다.

 

많은 수상을 하기도 했고 확실히 임팩트는 있었던 배우입니다.

 

당시 준수한 용모, 한국형 미인얼굴로 유명했는데요.

 

이후 미워도 다시 한번은 홍콩, 대만등 외국으로도 수출이 되면서 한류의 원조가 됩니다.

그는 1971년 천문학자 고(故) 조경철 박사와 결혼했으며 1980년대 들어선 사실상 연기 활동을 접었다. 조 박사는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상황을 주한미군방송을 보면서 해설해 ‘아폴로 박사’로 불리던 과학계 스타로, 2010년 작고했다. 

정상급 배우와 스타 과학자의 만남, 영화 속 같은 커플이라 언론에서 대서특필했다. 신문 1면에 나올 정도였다. 그들이 부부의 연을 맺은 계기도 영화다. 바로 ‘미워도 다시 한번’이다. 68년 해외 유치 과학자 1호로 귀국한 조 박사는 우연히 이 영화를 본 뒤에 전씨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섰다. 영화 속 남편인 내가 몰래 사귄 젊은 여인(문희)이 8년 만에 데려온 어린 아들(김정훈)을 받아들이는 전씨의 인내하는 여인상에 반해 “저런 천사 같은 여자가 있을까”라며 구애했다고 한다. 전씨는 생전에 “조 박사가 당시 구하기 힘든 커피 프림을 안겨주고, 영화 ‘잊혀진 여인’ 포스터에 나온 내 모습을 유화로 그려 선물했다”는 얘기도 전했다.

 

전계현은 원래 기독교라고 합니다. 배우로 활동하는 동안 잊고 있다가 결혼 후 다시 교회를 갔다고 합니다.

 

이번 작품은 유대민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고, 자신은 건너지 못한 모세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어느날 동아방송 프로듀서가 한 프로에 초대를 해서 거절하다가 나갔었다고 합니다.

 

거기서 처음 조경철 박사를 봤다고 합니다.

 

첫 만남에는 그다지 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조경철 박사가 전계현을 출연시켜달라고 졸랐다고 하는데요.

 

 이후 서울에 사는 아파트에 조경철이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잠시 밑에왔으니 나와달라고 말이죠.

그래서 전계현은 커피나 한잔 하고 가라고 해서 두사람은 연이 이어지기 시작합니다.

 

당시 프림을 선물해주고, 영화 잊혀진 여인의 포스터를 보고 선물을 그려 전계현에게 줬다고 합니다.

이후 점점 가까워지다가 결국 미군부대 안의 클럽을 찾아 식사를 하며 사랑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제는 전계현, 조경철 모두 돌아가겼으나 하늘에서 행복하게 지내길 바랍니다.

 

‘미워도 다시 한번’은 내게나 전씨에게나 분수령이 된 작품이다. 머슴·왕 등 강인한 남성상을 주로 소화해온 내가 본격 멜로물에 처음 도전한 영화다. 정숙하면서도 생활력 강한 아내와 귀엽고도 청순한 연인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우유부단한 가장을 맡았다. 나보다 2년 먼저 충무로에 입성한 전씨 또한 이 영화로 중량급 조연에서 톱스타로 우뚝 서게 됐다. 나 또한 ‘빨간 마후라’ 다음으로 꼽는 인생작이다

 

‘미워도 다시 한번’은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서울 국도극장 한 곳에서 37만 관객을 끌어들였다. 68년 서울 인구가 갓 400만을 넘었으니 서울 사람 10명 중 한 명이 본 셈이다. 재개봉관·재재개봉관, 지방까지 합하면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다. 요즘으로 치면 최소 1000만은 넘을 것 같다. ‘이 생명 다 바쳐서 죽도록 사랑했고’로 시작하는 주제가도 남진·이미자가 불러 공전의 히트를 했다. 또 69년, 70년, 71년 속편이 잇따르며 총 네 편의 시리즈로 완성됐다. 2편, 3편, 4편도 각각 관객 25만 명, 20만 명, 15만 명을 기록했다. 흥행을 노린 최루물이란 시선도 있지만 60년대 도시화 물결 속에서 흔들리는 우리네 가정과 남녀 관계를 조명한 의미마저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나는 그간 전씨와 자주 만나며 옛 추억을 되살렸다. 내가 “개봉 당시 표를 사려는 인파가 을지로 4가 국도극장에서 을지로 3가 네거리를 지나 명보극장까지 이어졌다”고 하면 전씨가 “남자든, 여자든 손수건을 들고 훌쩍거리며 극장 문을 나섰다. 홍콩·대만에서도 인기가 대단해 사인 요청이 밀려들었다”며 즐거워했다.  

 

내 아내도 나와 함께 영화에 나온 여배우 가운데 전씨와 가장 가깝게 지냈다. 크고 작은 일을 상의할 만큼 사이가 도타웠다. 우리 셋이 만날 때면 “내가 본본마누라”라며 분위기를 돋우곤 했다. 전씨가 23일 경기도 파주 통일통산에 있는 남편 묘소 옆에 누웠다. 천문학자인 남편과 함께 영원한 별로 빛날 것으로 믿는다. 천국에서의 사랑과 평화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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