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시라소니 이성순, 우리나라의 역대 최고의 싸움꾼은! 싸움실력과 싸움일화...

Star

by yajun1989 2021. 3. 17. 16:12

본문

반응형

 

역대 우리나라 최고의 싸움꾼은 누구일까?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한번쯤은 생각해봤을 흥미로운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역대 우리나라 최고의 싸움꾼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은 바로 세사람 신마적, 김두한, 그리고 시라소니다.

 

시라소니(이성순)와 김두한은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역대 최고의 싸움꾼으로 꼽을 경우에 반드시 포함되는 싸움꾼들이다.

이 두사람 중에서 유독 싸움기술에 있어서 신출귀몰한 실력과 테크닉을 발휘하면서 건달들 세계에서 최고의 싸움꾼이라는 닉네임을 부여받았던 사람은 바로 시라소니 이성순이다.

 

 동대문 이정재 주먹조직에서 활동했던 유지광은 그의 저서 ‘대명’에서 시라소니를 동양 최고의 싸움꾼이라고 정의를 내렸을 정도이며, 시라소니 이성순은 생전에 일대일 맞대결에서 한번도 져본 적이 없다고 자신의 싸움경력을 술회한 바 있다.

 

스피드에 있어서도 무척 재빠르다고 하며, 목격자들은 시라소니가 상대방을 눈깜짝할 순간에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는데, 시라소니의 동작이 너무나도 빨라서 어떻게 공격했는지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고 하며, 단지 시라소니가 한번 스치고 지났을 뿐인데, 거구의 상대방은 대자로 뻗어버렸다고 한다.

이처럼 시라소니는 강한 주먹과 빠른 스피드를 천성적으로 타고 났다고 볼 수 있는데, 거기에다가 그의 특급무기인 ‘공중걸이 박치기’가 피니쉬공격으로 터지면, 왠만한 주먹들은 그것으로 아작난다고 한다.

 

 시라소니가 한국 최고의 싸움꾼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시라소니는 싸움을 벌일 때 상대방이 몇 명인지, 누구인지를 전혀 따지지않고, 다수의 상대방들을 혼자서만 상대해서 쓰러뜨리는 탁월한 싸움기술과 싸움실력을 지녔다는 점이다.

 

 시라소니가 만주 천진의 카네미야일당과 싸울 때에 그의 탁월한 싸움실력이 크게 빛을 발휘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당시 시라소니는 홀홀단신으로 만주 천진에 있는 카네미야의 아지트로 쳐들어갔으며, 그곳에 포진하고 있는 카네미야 부하들 40명을 시라소니 혼자서 상대했다고 하는 전설과도 같은 싸움기록이 존재하고 있다.

 

 이 카네미야일당 40명을 상대로 시라소니 혼자서 싸운 기록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존재할 가능성이 없는, 그야말로 결코 깨지지않을 한국 최고의 싸움 신기록으로 영원히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1대 40명의 대결! 정말 생각만 해도 소름이 오싹 끼칠 상황이 아닐 수가 없다. 1대 10도 힘든 상황인데. 한사람이 얼마나 배짱이 두둑하길래, 혼자서 무려 40명을 상대로 해서 무한대결을 펼쳐서, 모두 다 제압하고 두목인 카네미야의 항복을 받아냈다고 하니, 시라소니의 싸움실력도 위대하지만, 그의 두둑한 배짱 또한 정말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시라소니 이후의 최고의 싸움꾼이라고 소문난 조창조씨는 혼자서 5명까지는 쓰러뜨릴 수 있지만, 상대방이 그 이상 되면, 이기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기자에게 솔직한 심경을 토로한 적이 있다. 수많은 강자들을 물리치고 싸움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조창조씨의 말이 가장 설득력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라소니에게 만큼은 이러한 상식과 논리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시라소니는 보통 사람들의 인간의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어서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싸움신화를 창조해냈던 것이다. 시라소니의 싸움기술과 실력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한계치를 완전 뛰어넘는 것이어서, 1대 40의 싸움에서의 승리를 성사시켰던 것이다.

 

 한국에서 오직 시라소니만이 가능했던 싸움신화를 시라소니는 차곡차곡 쌓아왔던 것이며, 주먹으로 그의 앞을 가로막은 자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에도 없었으며, 이러한 신출귀몰한 싸움경력들이 쌓이고 쌓여 그를 한국 최고의 싸움꾼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시라소니의 싸움경력은 신의주와 북한지역에서 시작되고, 만주와 중국을 거친 후에 해방이후 남한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해방이 된 직후 자신의 고향 신의주로 돌아왔던 시라소니 이성순은 고향 신의주에서 잠깐 동안 활동하다가, 북한 공산당의 횡포와 학살을 보고 환멸을 느껴서 남한으로 월남해 들어왔다. 

 

 신의주의 주먹세계를 평정하고 난 후 21살 때 안주의 박두성을 깨버림으로써 평안도 아니 북한 최고의 주먹으로 성장했던 시라소니가 만주와 중국에서 기라성같은 국제주먹들을 모조리 아작내고 난 후, 급기야는 남한의 한복판인 서울로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대형사건이나 다름 없었다.

 

 1945년 전후의 서울은 종로우미관의 오야붕 김두한이 서울바닥의 헤게모니를 전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과 만주, 그리고 중국의 주요도시들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서울로 금의환양한 시라소니와 경성의 오야붕 김두한의 위상정립이 시급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숲속의 제왕 호랑이와 들판의 제왕 사자가 한 우리안에서 만난 격이나 다름없었으니, 이들간에 최고의 실력자를 가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

그럼 김두한에 대해서 잠깐 설명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김두한이 누구인가? 시라소니가 워낙 명성이 자자해서, 다른 싸움꾼들에 대한 평가가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된 측면이 있는데. 김두한 또한 싸움에 있어서 출중한 싸움실력을 보유하고 있던 탁월한 싸움꾼이다.

 

 17세의 어린 나이에 우미관의 오야붕인 구마적에게 도전하여, 구마적을 당당히 KO시켜버렸던 김두한은 19세에 종로뒷골목의 또다른 오야붕 신마적과 맞대결을 펼쳐서 갈빗뼈 4대를 부러드리는 중상을 입히고 신마적을 완전히 제압했던 불세출의 싸움꾼이다.

 

 십대의 나이에 종로뒷골목의 양대산맥이었던 구마적과 신마적과의 맞대결에서 모두 다 KO시켜버린 김두한은 19세의 나이로 종로의 새로운 오야붕으로 화려하게 등극했으며, 종로통의 최고의 주먹을 두명씩이나 군말없이 제압했던 김두한에게는 더 이상 상대할 강자는 없을 것 같았다.

 

 두 마적들을 처지하고 한 후 김두한은 자신의 주먹조직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서울의 각지역을 돌면서 서대문, 용산, 마포, 왕십리, 영등포 등 서울의 각지역의 주먹세력들을 차례로 통합해나갔으며, 급기야 지방에까지 진출해서 수원, 대전, 대구, 광주, 부산등 전국의 주요도시들의 주먹세력까지 제압하면서 전국구주먹으로 급성장하고 있었다.

 

 

 

경성지역 장악에 이어 전국의 대도시지역까지 자신의 주먹을 과시하면서 통합해나갔던 김두한은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었으며, 명실공히 조선 최고의 주먹으로 우뚝 솟아올랐다.

 

그리고 해방된 이후 1946년경 김두한의 아성에 도전할 만한 대단히 위협적인 싸움꾼이 서울에 나타나는데. 그가 바로 시라소니 이성순인 것이다.

 

남한과 북한의 최고싸움꾼이었던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1936년 같은 시기에 각각 신마적과 박두성을 제압하고 남과 북의 최고싸움꾼으로 등극했던 것이다.

 

1946년 초경 남한으로 월남했던 시라소니가 먼저 김두한의 아지트를 방문하면서 남한과 북한의 최고싸움꾼간의 세기적인 대결이 서막을 열게된 것이다. 시라소니는 신의주선배 이영환과 종로에서 함께 만나 술한잔 걸치게 되었는데. 그 곳이 하필이면 김두한의 아지트였던 종로회관이었던 것이다.

 

 

 

종로회관은 우미관골목에 있는 대형 술집으로 김두한이 평소에 동생들과 술을 즐기면서 회의를 하던 김두한의 본거지였는데. 시라소니가 느닷없이 지인과 함께 김두한의 아지트인 종로회관으로 겁도없이 들어온 것이다.

 

 김두한의 주먹세력이 서슬 퍼렇게 깔려있던 종로우미관 골목에 시라소니가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자, 그렇지않아도 시라소니의 경성입성 소식에 잔뜩 독이 올라있던 종로의 오야붕 김두한의 눈에서는 독기가 품어져나오고 있었다.

 

김두한 부하 한명이 사무실로 찾아와 시라소니가 종로회관에서 술을 먹고있다는 소식을 접한 김두한은 곧바로 동생들을 불러모았고, 시라소니가 있는 종로회관으로 들어가 한자리 잡고 좌정했다.

 

이 때 김두한을 보필했던 동생들은 신영균, 김영태, 김삼수, 홍만길, 문영철, 김무옥, 김관철, 병수 등 10여명으로 김두한조직의 중간보스급 이상의 주먹들이어서 시라소니로서도 결코 만만치않은 상대들이었다.  

 

종로회관으로 김두한일행이 들어서고 나자, 주위의 손님들이 김두한을 알아보고, 저마다 인사를 건네기에 바빴는데, 한 구석에 좌정해있던 이영환도 김두한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순간, 등을 돌리고 앉아있던 시라소니가 김두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두한은 시라소니를 보자마자, 대뜸 ‘개새끼,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호랑이굴로 찾아들어와!’ ‘너 오늘 잘못 걸렸다! 네가 내동생들을 두들겨 팼대며, 너를 오늘 아주 완전히 죽여주마!’라고 시라소니에게 욕설과 함께 거친 일갈을 퍼붓는다.



처음 본 자신에게 김두한이 심한 욕설과 함께 시비를 걸자, 시라소니는 당당하게 맞대응하는데, ‘니가 그 유명한 김두한이냐?’라고 한마디 했다고 한다. 김두한의 욕설어린 시비로 김두한과 시라소니는 한판 싸움을 벌여야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게된 것이다.

 

 김두한이 시라소니에게 이처럼 사납게 대응했던 데에는 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 과거 김두한의 부하 2명이 신의주에 진출했다가, 시라소니에게 엄청나게 두들겨맞고 쫒겨온 적이 있었던 것이다. 

 

1940년경 김두한이 경성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나서, 자신의 주먹조직을 전국으로 확장하기 위해 한국 각지방으로 부하들을 파견해서 전국의 주먹조직을 통합하는 작업을 벌였었는데. 다른 지역들은 대부분 김두한의 우미관조직에 복속되었지만, 유일하게 신의주만큼은 김두한조직에 복종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신의주에는 일본경찰의 체포령이 때문에 시라소니가 만주로 떠난 뒤였으므로, 시라소니를 대신해서 정팔이 신의주에서 오야붕노릇을 하고있었는데. 김두한 부하들이 찾아와 우미관조직에 합류하라는 김두한의 메시지를 접한 정팔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하고 나중에 우미관에 가부여부를 통보해주겠다고 말하고는 지연전술을 폈다고 한다.

 

 그런데 신의주의 정팔이 계속해서 연락을 취해오지 않고 질질 끌게 되자, 김두한은 신의주의 정팔세력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털빠진 개고기와 두명의 중간보스를 다시 보냈던 것이다.

 

정팔은 김두한의 동생들이 다시 쳐들어올 것을 알고, 곧바로 사람을 보내 만주 봉천에 가있는 시라소니를 급히 신의주로 불러들인 것이다. 그리고 김두한의 동생들이 신의주 정팔사무실로 쳐들어갔을 때에는 이미 시라소니가 포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하 수십명을 대동하고 나타난 김두한의 동생들과 조우한 시라소니는 부하들은 끌어들이지 말고 우리끼리 자웅을 겨루자고 제안했고, 이렇게 벌어진 싸움에서 시라소니는 김두한의 두 동생인 병수와 털빠진 개고기등을 흠씬나게 두들겨 팼던 것이다.

 

김두한조직에서 중간보스로 막강한 주먹을 지녔던 두동생들은 시라소니와의 싸움에서 손한번 써보지 못하고, 시라소니의 박치기와 압발차기에 맞아 대자로 뻗어버렸다고 한다.

 

 시라소니에게 된통으로 당하고 신의주에서 쫒겨난 김두한의 동생들은 곧바로 서울 우미관으로 돌아와서 오야붕 김두한에게 시라소니에게 두들겨맞은 사실을 고해바쳤던 것이다.

 

 두동생들이 어처구니 없이 시라소니에게 얻어맞고 쫒겨오자, 김두한의 길길이 날뛰면서 노발대발했다고 한다.

 

자신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두동생을 무참히도 두들겨팬 시라소니에 대해 깊은 원한을 품게된 김두한은 시라소니에게 복수하기 위해 곧바로 신의주로 시라소니를 찾아갔다.

 

 김두한이 시라소니를 찾아서 신의주로 갔지만, 이미 시라소니는 만주 봉천으로 떠난 후였으며, 김두한은 시라소니가 있는 만주 봉천으로 다시 향했는데, 봉천역에서 일본경찰의 불신검문에 걸려 다시 열차를 타고 경성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만일 이때에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봉천에서 만나 싸움을 벌였다면, 조선 역사상 최고의 대결이 벌어졌을 것이다.

 

구마적과 신마적의 두거물을 쓰러뜨린 남한의 최고주먹과 중국대륙을 누비면서 수많은 국제주먹들을 쓰러뜨려왔던 싸움천재 시라소니와의 세기적인 대결이 펼져질 뻔했는데, 아쉽게도 김두한이 일본경찰의 검문에 걸리는 바람에 시라소니와 김두한의 세기적인 대결은 다음기회로 이전되었던 것이고. 1946년 종로회관에서 시라소니와 김두한의 세기적인 대결이 다시 펼쳐진 것이다.

 

 

이러한 구원(舊怨)이 있던 김두한이 자신의 아지트로 겁도없이 방문한 시라소니를 곱게 볼리가 없었으며, 오랫동안 손봐주기로 벼르고 있던 김두한이 시라소니에게 먼저 시비를 걸었던 것이다.

 

김두한의 욕설에 시라소니가 반말로 대꾸를 하자,

 

곁에서 때를 기다리던 김두한의 보디가드 김관철이 공격하기 위해 시라소니에게로 달려왔다. 그런데 시라소니에게 먼저 선제공격을 가했던 김관철이 ‘딱’소리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이 아닌가!

 

 

자리에서 일어난 시라소니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김관철에게 재빠르게 박치기로 받아버리고 나서 무릎찍기로 가슴팍을 찍어버렸던 것이다. 시라소니의 이 두 번의 공격으로 김두한의 보디가드였던 김관철은 손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기절하고 만 것이다. 시라소니의 신출귀몰한 싸움실력이 또다시 빛을 발휘했던 것이다.

 

김관철은 김두한을 항상 밀착경호하는 임무를 맡은 최측근 경호원으로 키가 184cm의 거구로 힘과 완력이 세기로 소문난 장사다. 그런 거구의 김관철이 시라소니의 놀라운 두 번의 공격을 받고 맥도 못쓰고 대자로 뻗어버린 것이다.

 

 김관철이 쓰러지자, 김두한이 자리에서 일어섰고 주변에 있는 김두한의 동생들도 일어났지만, 시라소니에게 함부로 공격하지 못한 채 팽팽한 긴장감이 나돌고 있었다. 10여명의 김두한일행과 시라소니의 대결이 벌어질 일촉즉발의 위기의 순간, 주위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두사람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라소니가 김두한에게 한마디 건냈다고 한다. 시라소니는 김두한에게 ‘김두한 당신, 나보다도 나이가 어린 것으로 아는데, 이렇게 보자마자 반말과 욕지거리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는가, 아무리 주먹으로 먹고사는 건달이지만, 주먹세계에도 예의란 게 있어야지, 이것이 김두한 당신의 예법인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시라소니를 잔뜩 노려보던 김두한이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시라소니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넸다고 한다.

 

 ‘시라소니! 당신이 우리구역에 나타났다고 하길래,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 알아보기 위해서 내가 이렇게 온 것이외다. 그렇지 않아도 험악한 세상인데, 우리가 서로 원수처럼 으르렁거릴 필요가 뭐 있겠소이까?

 

참, 명동의 이화룡과도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당신이 나보다 나이가 연배시니까, 내가 이제부터 당신을 형님으로 대우하겠습니다. 자, 이리와서 우리 술한잔 먹으면서 좋은 덕담이나 나눕시다‘

 

곧바로 싸움을 벌일 줄 알았던 김두한이 시라소니에게 형님호칭을 사용하면서 화해를 추구하는 놀라운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이것은 그당시 종로회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던 일이라고 하며, 그들은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곧바로 싸움을 벌일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전혀 뜻밖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호걸이었던 김두한과 시라소니는 서로 극적인 화해를 했으며, 시라소니는 자신이 때렸던 김두한부하들에게 정중히 사과했다고 하며, 이후 김두한과 부하들, 그리고 시라소니는 밤새도록 얘기꽃을 펼치며 술을 마셨다고 한다.

 

이렇게 ‘세기적인 대결’이 될 수 있었던 김두한과 시라소니의 싸움은 두 번씩이나 석연치않은 이유로 무산되고 말았다. 신은 아마도 두사람의 영웅이 싸움을 벌였다면, 그 중 한사람이 완전 폐인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는가 보다!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싸움을 벌여서 김두한이 패했다면, 김두한은 부하들에게 신망과 존경을 잃어서 그의 주먹조직이 와해되어버렸을 것이고, 반대로 시라소니가 패했다면, 시라소니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폐인처럼 되어버렸을 것이다.

 

신은 이 두경우를 다 원치 않았던 것이고 두사람의 거물들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상황으로 유도한 것이 아닐까?

 

 

김두한과 시라소니의 대결에서 김두한이 시라소니에게 일방적으로 밀려서 형님운운하면서 무릎을 꿇었다는 일화가 가장 많이 나돌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김두한이 시라소니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하는 일화는 실제의 상황이 많이 와전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한 상황을 최초로 목격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명확히 밝히지도 않고 있다. 그러한 상황을 목격했다고 하면, 그 목격자의 정확한 이름을 밝혀야 사실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정확한 목격자의 이름도 없이 한사람이 쓴 것을 다른 여러사람들이 퍼다나르면서 김두한이 시라소니에게 무릎꿇었다고 하는 것은 기정사실처럼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그당시의 상황을 잘 파악해보면, 김두한이 시라소니에게 겱코 무릎을 꿇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다. 그당시 김두한 곁에는 김두한 주먹조직에서 가장 센 동생들이 10명이나 포진하고 있었으며, 또한 김두한은 다른 주먹들과는 격이 다른 싸움꾼이다.

 

 그당시 우리나라 전국의 주요 주먹세력들을 굴복시키고 한국을 대표하는 거대한 주먹조직으로 발돋움한 우미관조직의 오야붕 김두한이 시라소니 한명에게 그렇게 손쉽게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당시의 상황에도 전혀 맞지않는다.

 

더군다나 그곳은 종로회관으로 김두한조직의 안방이며 수많은 손님들이 지켜보는 현장인데.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그것도 10명의 부하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혼자일 뿐인

 

시라소니에게 겁먹어서 무릎을 꿇었다고 하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전혀 없었던 상황이다.

 

 김두한이 시라소니에게 화해를 하면서 나이가 많은

 

시라소니에게 형님운운한 것을 두고 호사가들이 형님이라고 했으니,

 

김두한이 시라소니에게 일방적으로 당해서 무릎꿇은 것이 아니냐라고

 

잘못 해석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로 전해지면서 사실처럼 굳어진 것이다.

 

 김두한이 시라소니에게 형님이라고 한 것은 예의를 갖춘 것일뿐,

 

굴복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아뭏튼 조선 최고의 싸움꾼을 가릴 수 있는 시라소니와 김두한의 대결은 극적인 화해가 이뤄짐으로써 무산되어 버렸고,

 

시라소니와 김두한 중 누가 더 센지는 영원히 미결로 남게되었다.

 

 일본가라대계의 무도가들과 대결을 펼쳐서 최고의 파이터로 명성이 높았던

 

최배달(최영의)은 생전에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강한 상대로 김두한을 꼽았다고 한다.

 

최배달은 다른 사람들은 다 이길 수 있어도,

 

김두한 만큼은 자신이 이긴다고 단언할 수가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최배달도 인정했던 것처럼 전성기 시절에 김두한의 싸움실력은 남한지역에서는 최고라고 평가할 수 있다.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