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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명의 전 자부 홍난숙 씨의 문집단 탈출기~15살의 신부..지.옥.같은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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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jun1989 2021. 3. 1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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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난숙씨는 1966년 서울에서 통일교 신자 가정에서 출생했다. 난숙씨의 오빠가 문 교주 딸 예진과 결혼한 것으로 볼 때 홍씨 가족은 이른바 엘리트 통일교 가족으로 분류된다.



홍씨는 문 교주의 눈에 들어 15세 때 당시 19세인 문교주 큰 아들 문효진과 결혼, 그때부터 이혼할때가지 불행한 삶을 살게된다. 처음 결혼 당시 홍씨는 문씨 일가의 가족사진에 나타난 아름다운 미소와 행복한 모습을 보며 그들을 이상적인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통일교의 여느 어린 십대들 처럼.

 

 

그러나 결혼 후 곧 문 교주에게는 13명의 자녀가 있고 그들 중에는 통일교 금기 사항인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불법인 마약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으며 자신의 남편은 그들 중 최악임을 깨달았다.




남편인 효진은 부모가 주는 많은 돈으로 코케인과 파티를 즐겼으며 여러가지쾌락을 즐겼다. 홍씨는 그런 남편을 말리다가 심한 폭행을 당했고, 7개월째인 뱃속의 아이를 총으로 죽이겠다는 위협도 받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난숙의 남편은 점점 더 난폭하게 되어갔습니다.

 

난숙은 자녀들의 안전에 위협을 느끼고 남편이 수 시간 동안 코케인을

 

복용하고 침실에 들어가 있는 사이에 다섯명의 자녀를 미니 벤에 태우고 담요로 덮은 후 문의 호사스러운 저택에서 영구히 빠져 나왔습니다.

나는 오늘 탈출하려고 한다. 결혼 생활에서 얻은 유일한 성스러운 소산인 내 자녀들을 데리고, 나를 매질하던 그 남자와 그렇게 만든 가짜 메시아 - 하나님이 지상 대리인으로 결코 택하지 않았을 문선명과 그의 아들 - 을 뒤에 남겨두고 떠날 것이다.

 

 '문 목사'를 '지금 내가 아는 사기꾼'으로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은 길고도 고통스러웠다.



오로지 그런 깨달음이 하나님께 대한 내 신앙을 끝내 흔들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과정이다.



문은 하나님을 저버렸지만, 하나님은 날 버리지 않으셨다.



어린 여성을 성적 쾌락의 장난감 내지 분노의 배출구로만 삼아온 남편의 손아귀 속에서 나를 위로한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셨다. 잠든 아이들과 몇 주 동안 극비리에 챙겨온 가방들을 돌아보는 지금도 하나님은 날 인도하고 계신다.

 

 

문선명 목사에 대한 신앙은 지난 29년간 내 삶의 중심이 됐었지만, 이제 깨어진 그 믿음은 내 모성애에 견줄 바조차 못된다.



독기 서리고 밀폐된 ‘참가족’ 세계 속에서 오직 아이들만이 유일한 내 기쁨이었다. 나는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 도망해야만 한다.



 당초 내가 큰 아이들에게 떠날 생각을 알리자, 그것이 곧 여태 즐겨온 호화로운 삶의 끝장임을 알면서도 아무도 뒤에 남겠다는 아이가 없었다. 앞으로는 대저택도, 운전기사도, 올림픽 사이즈 풀장도, 당구장도, 승마 레슨도, 사립학교와 일본어 선생도, 최고급 휴가도 없는데 말이다.

 

 문씨 집 바깥 담 저편에서는 아이들이 ‘메시아의 참 자녀들’이라는 경배를 받지 않게 된다. 아이들에게 절하고 섬길 기회를 얻으려고 경쟁하는 신도들도 없을 것이다.

 

“우린 이제 엄마랑 작은 집에서 살래요.” 맏딸의 말은 내 소박한 꿈을 그대로 전해 받은 것이었다.

 

그러자 두려움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문선명 목사의 생활 궤도 밖으로 떠나는 것은 곧 영적으로 버려짐을 뜻하는데, 신체적 위험도 동시에 따르지 않을까? 내가 도망가면 통일교가 날 잠재우려고 추적해 오지 않을까? 차라리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인가? 효진이 나와 아이들을 죽이려고 하던 것이 몇 번이던가.

 

마약이나 술을 먹고 기분 좋으면 살인 흉내도 예사로 하지 않던가. 교회 돈으로 산 진짜 총으로 나나 누구든 방해하는 자를 공포 속으로 몰고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도주계획에 최선을 기울였다. 결심하자마자 돈부터 챙겼고, 아이들 교육비로 따로 떼어둔 돈을 은행에서 찾았다. 시어머니(한학자)가 정기적으로 건네준 용돈은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았다. 아기 출생 기념식 때 교회서 입으라고 시어머니가 예거 부티크에서 사다준 수천 달러 짜리 옷도 그 이튿날 현금으로 바꿔왔다.



문씨네를 이미 떠나 따로 살고 있는 나의 오빠와 문 목사 맏딸인 내 올케의 도움으로 매사추세츠에 적당한 집도 하나 봐 두었다.

 

그들이 교회를 떠날 때 부러워하던 내가 몇 년 후 같은 신세가 되는 셈이다.



과거 문의 엘리트 그룹에 속해 있다가 교회를 이탈한 나의 부모들을 염려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염려스러웠다. 부모님은 오빠로부터 내가 탈출했다는 소식만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의 도움이 늘 고마웠다. 어릴 적 서로 의견이 안맞는 일이 있을 때도 오빠는 늘 나를 도왔다. 그는 우리의 탈출 후 보호 방법을 알려 줄 변호사를 미리 찾아냈고, 탈출 당일부터 변호사의 조언이 도움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화요일에 떠난 것도, 매사추세츠 카운티 가정법원이 매주 수요일 학대받는 여성들의 배우자 접근금지령 신청을 청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5년간 아이들을 돌봐준 구미코 부부를 보호하는데도 신경을 썼다. 그녀는 이트 가든 정원사인 남편과 함께 헌신적인 일본계 통일교도였다. 구미코는 몇 주 동안 내가 짐싸는 것을 보고도 침묵했다. 아무도 감히 참가족의 일원에게 질문하는 무례를 행치 못하지만, 그녀는 수년간 나의 고통을 목격해 왔다.

 

나는 도주계획에 최선을 기울였다. 결심하자마자 돈부터 챙겼고, 아이들 교육비로 따로 떼어둔 돈을 은행에서 찾았다. 시어머니(한학자)가 정기적으로 건네준 용돈은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았다. 아기 출생 기념식 때 교회서 입으라고 시어머니가 예거 부티크에서 사다준 수천 달러 짜리 옷도 그 이튿날 현금으로 바꿔왔다.

 

문씨네를 이미 떠나 따로 살고 있는 나의 오빠와 문 목사 맏딸인 내 올케의 도움으로 매사추세츠에 적당한 집도 하나 봐 두었다.



그들이 교회를 떠날 때 부러워하던 내가 몇 년 후 같은 신세가 되는 셈이다.



과거 문의 엘리트 그룹에 속해 있다가 교회를 이탈한 나의 부모들을 염려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염려스러웠다. 부모님은 오빠로부터 내가 탈출했다는 소식만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의 도움이 늘 고마웠다. 어릴 적 서로 의견이 안맞는 일이 있을 때도 오빠는 늘 나를 도왔다. 그는 우리의 탈출 후 보호 방법을 알려 줄 변호사를 미리 찾아냈고, 탈출 당일부터 변호사의 조언이 도움되기 시작했다.

 

문씨 집안에서 내가 영 떠날 줄로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사실은 내가 그러리라 생각할 만큼 날 충분히 아는 사람도 없었다. 14년간 문씨네 한 가운데 살면서 내가 뭘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물어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들은 명령하고, 나는 순종했을 따름이다. 그런 무관심이 지금 나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

난숙은 마침내 이혼을 결심하고 95년 8월 8일 집을 나왔다. 그리고 그 다음날 메사츄세츠 가정법원에서 2년정도 걸리는 이혼재판에 들어갔다. 그녀는 이혼재판에서 남편이 갖고 있는 권총 등 55개의 총기류 리스트도 증거물로 제출했다. 마침내 97년 12월 이혼이 성립됐고 남편으로부터 현금 60만 불과 월 9천불의 교육비를 지불받게 됐다.




그녀는 가족과 통일교 리더들이 자신을 입다물게 하기 위하여 해를 가하지 않을까 많은 걱정을 하고 있으며, 재판 이후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여성들의 「헬프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최근 「IN THE SHADOW OF MOON」이라는 책을 펴냈으며, 이책은 △문왕국으로부터의 탈출 △15살의 신부 △지옥같은 생활 등 3부로 이뤄져 있다. 일본에서 「문선명 일가의 가면」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책은 통일교 최대 기반이 된 일본 신도들에게 읽는 것이 금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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