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은 가수에서 연기자까지 만능엔터테이너로 불리고 있습니다. 가수로서 김창완은 워낙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모르는 분들이 없을 것 같은데요. 젊은 세대에게는 김창완이 가수라기보다는 배우로 많이 알려져 있을 정도죠.
김창완은 전설의 밴드 산울림의 멤버였는데요. 산울림은 김창완 형제 3명이 만든 밴드로 정식으로 음악을 배운 적이 없었지요. 김창완 형제는 모두 머리가 비상하여 명문대에 진학을 했는데요. 김창완 동생과 부인 강귀빈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깅창완 나이는 1954년 2월 22일생입니다. 그룹 김창완밴드, 산울림으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가족으로는 배우자 강귀빈 동생 김창훈, 동색 김창익이 있습니다. 1970년대 말과 80년초에 큰 인기를 끌었던 그룹이었죠.
김창완 셋째 동생 김창익의 사망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인데, 그 정확한 사망원인과 캐나다 이민 배경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김창완의 셋째 동생 김창익의 사망 사실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김창익 역시 산울림의 멤버로 활약을 했기 때문입니다. 김창익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그 이유는 너무나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기 때문입니다.
3형제는 모두 음악을 배우지 않았는데요. 이 때문에 전문적인 뮤지션으로 나서길 꺼려했지요. 김창완을 제외하고 김창훈과 김창익은 직장인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1983년 산울림이 해체를 한 원인이 이 때문이지요.
김창익 사망원인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김창익은 1983년 대우자동차에서 근무를 하다가 1997년 외환위기로 회사를 나오게 됩니다. 그러다가 캐나다 이민을 선택하게 되지요.
김창익은 이민생활을 하면서 캐나다 벤쿠버의 한 식품 도매업체의 이사로 근무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2008년 1월 29일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김창익은 전날부터 내린 눈으로 지게차 작업이 위험해서 직원들에게 절대 밖으로 지게차를 가지고 나가지마라고 지시를 했다고 합니다. 김창익은 직원들의 안전을 위해서 본인이 직접 지게차를 운전하게 되는데요. 그런데 김창익은 눈때문에 화물을 내리는 것에 어려움을 겪은 후 지게차의 포오크를 맨 위쪽 까지 들어올린 상태에서 밑으로 내리지 않은 채 움직이다가 경사진 외부 작업장의 눈길에 지게차가 넘어지면서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지게차에 깔려 큰 부상을 입은 김창익은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이 되었지만 과다출혈로 사망을 하게 되지요. 김창익이 안전을 위해서 직원들 대신에 지게차를 몰았지만, 이것이 본인의 생명을 빼앗아간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창익 사망원인은 지게차로 인한 사고라고 할 수 있는데요. 상당히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창완은 김창익을 잃은 후에 큰 충격으로 오랜기간 폐인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되지요.
당시 김창완이 막내 동생을 떠나보내며 쓴 편지는 지금 읽어도 큰 감동을 줍니다.
김창완: "‘창익아, 창익아, 내 동생 창익아’... 막내 김창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무력감이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하지만 평소에 늘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사랑받기 원했던 고인의 향기가 크나큰 슬픔 속에서도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주었다. 웃는 드러머 김창익을 사랑한 모든 분들을 위로해야 하는 일이 남아 있다. 사랑하겠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행복하도록 사랑하겠다. 천국에서 웃으며 드럼을 치고 있을 동생을 생각하며, 이렇게 동생이 떠날 줄 몰랐던 형이…"
김창완: "(친동생이 사망했을 때) 형제는 한 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 개체가 모여 형제가 된 게 아니라 형제는 한 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냥 사지가 절단됐다고 생각하면 딱 맞을 것 같다."
김창완: "형제를 잃기 전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가 됐든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 때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랐다."
김창완: "‘세월이 약이다’는 말이 있는데, 난 그렇게 생각 안 한다. 난 안 잊는다. 정말 사랑하는 가족이든 애인이든 세월로 씻어서 잊으려고 하기 보다는 고이 간직해서 진주알을 만드는 것도 방법 아닌가 싶다."
김창완: "통증을 피할 마음 없다. 언제까지고 내 마음이 계속 통증을 느낀대도 괜찮다. 아프면 아픈 거다. 그러면 작품을 더 열심히 하게 되고 작품을 하는 동안은 잠시 잊을 수 있고..."
김창완의 둘째 동생인 김창훈은 유명 아나운서와 결혼을 했는데요. 1981년 김창완이 김미회 아나운서와 같이 라디오 진행을 하고 있었는데, 7월 군대를 제대한 김창훈이 게스트로 나왔고, 김창훈 김미회는 연인관계로 발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지난 방송되는 SBS '힐링캠프' 세대공감 힐링콘서트 특집 녹화에서 주옥같은 사랑노래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산울림 김창완은 아내와의 숨겨진 러브스토리를 털어놨습니다. 김창완은 “아내의 첫 인상이 뒷모습이었다.”며
김창완 부인(아내) 강귀빈은 의사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 김신화가 있는데요. 김창완 아내 직업 역시 대단한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독서 모임을 통하여 처음 만나게 됩니다. 김창완은 서울대학교 강귀빈은 고려대 의대를 다니고 있을 때에 두 사람은 처음 만나게 됩니다. 김창완이 먼저 아내 강귀빈에게 반하게 되었는데요. 긴 생머리를 한 강귀빈의 뒷모습에 반해서 먼저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아내의 뒷모습에 반해 결혼한 사실을 고백했는데요. 또 김창완은 아내와 연애할 당시 길거리에서 무작정 8시간 동안 아내를 기다린 적이 있다고 밝혀 진정한 로맨티스트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김창완 강귀빈은 5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게 되는데요. 김창완 결혼은 1978년 11월 하게 됩니다. 김창완은 아내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을 했습니다. <나를 낳은 사람은 어머니이지만, 나를 키운 사람은 아내이다>라고 말이죠. 김창완은 아내 강귀빈을 상당히 존경하며, 여자로서 아내로서 사랑하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창완은 상당히 특이한 정신세계의 소유자입니다. 원래 머리가 좋고,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은 특이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김창완이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음악을 정식으로 배우지도 않았는데, 밴드를 결성하여 큰 인기를 끌었고, 연기 역시 배우지 않았는데 누구보다 깊은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김창완의 연기력의 바탕은 독특한 정신세계와 감수성이 너무나도 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마치 자신이 맡은 배역이 실제 배역인마냥 심도 깊은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창완은 배우로 그리고 가수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예능이나 자신의 이야기를 방송을 통하여 한 적이 많이 없기 때문에 그의 인생사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창완: "대학 다닐 때도 빨강 파랑 노랑 원색으로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서 온 벽에 도배를 해놓고 그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자폐라고 해야 되나, 좀 묘한 때였죠."
김창완: "대학교 1학년 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뜬금없이 기타를 샀어요. 저걸 한번 사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궁금했죠. 그걸 연습해서 뭘 해보겠다고 생각할 만큼 나를 사랑하거나 기대하지 않았어요. 돌이켜보면 그때 굉장히 한심하던 시절이었죠."
그리고 1975년 2월 서울대 졸업식을 며칠 앞둔 김창완은 방에서 '바리캉'으로 자기 머리를 싹 밀어버리게 됩니다. 결국 졸업식때는 가발을 쓰게 되죠.
김창완: "나는 왕따였으며, 상당히 상태가 안 좋은 아이였어요."
머리를 삭발한 이유는 김창완 본인도 알지 못합니다. 그냥 해보고 싶어서 한 것이죠. 혹은 남들보다 2년 일찍 대학을 들어갔기에, 뒤늦은 사춘기가 온 것일 수도 있고요.
그렇게 괴팍한 생활을 하던 김창완은 음악을 만나면서 조금씩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합니다.
김창완; "기타 교본을 보고 연습을 하다가 한 달 만에 ‘왜 가’라는 노래를 썼어요. 음악시간에 악보 쓰는 법은 배웠으니까, 작곡이라기보다 그냥 흉내 낸 정도죠. 그다음부터 산울림 데뷔할 때까지 100곡 정도 썼는데, 음악을 창작하면서 극도의 좌절감과 무력감에서 조금씩 조금씩 탈출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려서부터 동기부여가 되는 일을 거의 경험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죠."
확실히 김창완은 평범한 사람과는 조금 다르네요.
이런 천재 기질이 있는 사람은 속박을 굉장히 싫어하죠.
평범한 여자와 결혼했다면, 아마 결혼생활이 쉽지 않았거나 이혼으로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행복이란 별게 아닙니다. 상대의 행동을 바꾸려는 것보다, 나를 상대에게 맞춰서 살아가게 되면 행복이 절로 찾아오죠. 다만 상대의 행동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나의 행동을 바꾸는 것 역시 쉽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죠.
강귀빈처럼 배우자가 될 사람의 특성을 잘 파악하는 것뿐만 아니라, 본인이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 역시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배우자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살아도 백번 행복한 결혼 생활이 된다.
김창완은 정말 천재이자 만능엔터테인먼트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김창완이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통하여 좋은 연기를 많이 보여주길 바라며, 기회가 된다면 좋은 노래, 좋은 음악을 많이 들려주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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