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가요계 전설, 가수 박재란의 풍파 가득한 인생사와 둘째 딸 고 박성신을 향한 눈물의 이야기.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좋은 시절과 아픈 시절이 있다. 박재란 가수의 삶을 보면 최고에 순간과 안타까운 가정사가 가슴을 저밀게 만듭니다.
가수 박재란이 전 남편의 사업 실패와 외도, 딸 박성신의 죽음으로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중견가수 박재란은 16살의 이른 데뷔로 과거 찬란했던 영광을 누린 가수입니다. 그가 오랜 공백기를 깨고 신곡을 내놓으며 그간의 사정을 진솔하게 이야기해 많은 이들의 눈길이 집중되고 있는데요. 박재란 딸 박성신 대를 이어온 가수 이야기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전 남편의 사업 실패와 외도로 아픔을 겪은 뒤 이혼을 한 박재란은 미국에서 생활했어요. 하지만 전 남편의 반대로 두 딸은 한국에 남겨두고 떠난 박재란은 미국에서 죽으려고 했어요. 되는 것이 없었기 때문 입니다. 내가 살면 뭐 하나 라고 털어노았습니다.
가수 박재란 본명은 이영숙 으로 출생1938년 출생 했다고 하는데요. 현재 박재란 나이는 78세 라고 합니다. 겉보기에는 아직까지 60대 같은 박재란 씨 많이 동안의 얼굴인 듯 싶은데요. 긴 세월 노래한 분 답게 박재란은 1961년 노래 럭키 모닝 정식 데뷔를 했다고 하는데요. 그 훨씬 이전 16살인 이른 나이에 사실 노래를 부르며 유명했던 박재란 입니다.
그때 나이가 17세라 하니. 지금의 신동이라 볼 수 있습니다.
17세 나이떄부터 노래를 불러서 스타가 되었으니, 얼마나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을까요? 요즘처럼 각각의 회사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맨탈을 관리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다 보니. 더욱 힘들고 괴로움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대한 민국 사람이면 누구가 알고 있는 "산 넘어 남촌에는 " 너무 정감이 있는 곡들이죠.
소쩍새 우는 마을 , 강화도령. 푸른 날개. 밀집모자 목장아가씨. 등등 당대 최고의 노래입니다.
그녀는 정상의 자리에서 돌연 결혼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는데요. 남편의 사업 실패와 외도 등의 이유호 힘겹게 이혼을 결정하게 됩니다.
전남편 박운영은 영화제작일을 하다가 사기를 당하게 되면서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 100평 남짓 2층 집도 팔게 되고 전셋집으로 이사를 갈만큼 경제적으로 힘들어졌고 두사람의 사이도 안좋아졌습니다. 결국 두사람은 여러가지 불화를 시작으로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박재란은 "(이혼 후) 우울증이 왔다. 이혼 이후 일을 하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재란은 "그 당시 이혼이라는 건 여자가 한 번 죽는 것이다. 한 번 죽었다 살아났다고 생각해야 한다"며 이혼 이후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어린 두딸은 남편의 반대로 한국에 남겨두고 1973년 홀로 미국행을 선택하게 됩니다.
재기를 위해 한국을 오가며 재기를 꿈꿨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고 아파트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그녀의 모든것을 읽게 되는 비극도 찾아왔습니다.
불법 체류 단속으로 수감 생활을 하기도 했고, 두 번째 이혼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또한 사업과 관련된 사기를 당하는 등 고난의 연속이었다.
미국에서 마음의 병을 얻은 박재란은 악성위궤양과 신장염으로 쓰러지기도 하고 부정맥으로 대수술도 2번이나 받았다고 합니다.
낯선 타지에서 두딸에 대한 그리움과 극심한 생활고로 "미국에서 죽으려 했었다. 되는것이 없으니 내가 살면 뭐하나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처음에 미국행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낙원인줄 알았다. 하지만 불법체류 신세가 됐다. 재혼을 해 영주권을 얻었지만 불행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박재란은 "미국에서의 제 삶은 하루하루가 눈물이었다. 미국에서 가수 활동을 했다. 1970년대 중반 한인 교포들이 너무 적어 연예인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너무 적었다. 결국 밤업소에서 일할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박재란은 그곳에서 또 사기를 당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박재란은 미국서 한 여자가 스테이크 레스토랑을 내자고 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가지고 간 돈, 지금으로 따지면 한 10억 이상을 믿고 투자했어요. 레스토랑까지 보여줬지만, 사기였다 또 한번 역경을 이야기 합니다.
동업자로 인해 약 20억 빚을 지게 됐다는 박재란은 우울증에 빠졌다. 이에 대해 박재란은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컸다. 쫄딱 망했다.
두 딸에 대한 그리움과 무대에 대한 간절함으로 고통의 시간을 견뎌온 박재란. 그는 귀국 후 한 신문을 통해 둘째 딸 박성신이 가수 데뷔 했다는 소식을 전했어요.
박재란은 한국에 돌아왔을 때, 다 성장했으니 만나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연결이 돼서 만나게 됐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박성신은 지난 2014년 심장질환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는데요.
한 인터뷰에서 박재란은 과거 둘째 박성신을 임신했을 당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임신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복대를 항상 차고 다녔다고 합니다.
"너무 꽁꽁 묶어서 그걸 못견디고 조산했다. 인큐베이터에서 석달을 있었는데 모든 기관이 다 약했다. 운동을 해도 안됐다"고 고백했는데요.
결국 평소 지병인 심장질환으로 먼저 떠난 둘째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은 이루 말할수 없을것 같습니다.
그때 당시에 대하여 박재란은 사위에게 갑자기 딸이 쓰러졌다고 전화가 왔다며 딸의 영정사진 앞에서 기절 했다고 말했어요. 이어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난 후였습니다. 사위가 딸의 묘지를 안 알려줬습니다. 딸의 마지막 순간을 하지 못 했다라며 눈물을 보였 습니다.
첫째딸 박성은씨와도 자주 볼수 없다고 하는데요. 남편의 사업때문에 중국으로 이민을 간지 20년째라고 합니다. 북경대에 다니고 있는 손주들 또한 1년에 한두번 정도만 만나고 있다고 해 애뜻한 마음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박재란은 현재까지 딸의 이루지 못한 가수의 꿈을 대신하며 "네가 못이루고 갔던 것 백분의 일이라도 엄마가 하고 가겠다"는 생각으로 고령의 나이에도 가요 무대에 서고 있고 교회의 일꾼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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