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같은 미남에 큰 키로 여성의 마음을 한 몸에 사로 잡았던 당대 최고의 미남 임성민은 숭실고등학교를 거쳐 건국대학교 체육학과를 중퇴하고 1977년 동양방송 탤런트 18기로 데뷔했다고 하는데요.
180cm/77kg의 신체조건이면 요즘에도 아주 훤칠한 키에 잘 빠진 몸매를 가진 남자로 인정받는다. 더욱이 임성민은 고교시절(숭실고) 육상선수였기 때문에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로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매력적인 배우였고, 게다가 임성민은 얼굴도 조각같은 미남이어서 80년대 최고 섹시한 남자배우 1순위로 꼽히던 배우였다.
그래서 고 임성민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임성민을 얼굴만 잘 생긴 미남배우 정도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 임성민이 살아생전 약 19년 동안 배우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연기에 눈을 뜬 시기는 '사의 찬미(1991년)' 이후부터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물론 <사의 찬미>를 통해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니까 그렇게 인식할 수 있겠지만, 임성민은 85년 작품 <장사의 꿈>으로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던 경력도 있다.
드라마까지 겹치기 출연하며 84년 한해를 바쁘게 보낸 임성민은 1985년 <색깔있는 남자>에서 당시 오트리오로 불리운 여배우 오수미, 오혜림, 오경아의 상대역으로 출연하였고, 신승수 감독의 데뷔작 <장사의 꿈>에서 금보라와 호흡을 맞추며 열연을 펼쳐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80년대 한국영화계가 정부의 3S 정책으로 SEX 영화가 붐을 일으킨 시기임을 감안하면 남자배우로써 임성민은 독보적인 존재나 다름없었다. <변강쇠>와 같은 토속 에로영화에서의 이대근과는 다른 현대적인 섹시미를 발산했던 임성민이었던 것이다.
또한 임성민은 1985년 옷 잘 입는 배우로도 꼽히기도 했다. 그해 베스트드레서로 꼽힌 연예인은 가왕 조용필, 나미, 유지인 그리고 임성민이었다.
그러나 그는 일찍 결혼한 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고 당신 어린 딸을 사란했던 그는 부인과 이혼하고 난 후에도 촬영도중에도 딸을 챙길 만큼 이버지의 사랑은 충문했던 연기자이기도 한데요.
인기가 얻으면서 당시 연예기자들 사이에 미혼 여성이던 매니저와의 스캔들이 나돌기도 했고 급기야 매니저의 집이 있던 서울 반포 한신아파트에서 연예기자들이 취재를 하기위해 집안으로 들어가자 3층 높이인 그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한동안 촬영장에 발을 절면서 나타나기도 한 불운의 스타이기도 합니다.
지난 9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탤런트 임성민이 1995년 8월 초 간경화로 쓰러져 결국 일어나지 못하고 그달 20일 죽음으로 이어져 충격을 주었는데요. 이러한 그는 1990년 만성 간염 판정을 받은 이후 영화 애니깽을 촬영하다가 1995년 8월 20일 향년 만 39세의 나이로 지병인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임성민이 주목을 받는 것은 최근 한 방송에서 임성민은 원조 얼장 남자스타로 꼽힌 덕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김희애, 故 최진실 등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와 90년대 여성들의 로망으로 손꼽히며 예능까지 접수하기도 했는데요.
1977년 TBC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입문해 <사의 찬미>, <무릎과 무릎사이>등의 히트작을 남기고 1995년 영화 <애니깽>촬영 도중 간경화로 사망했습니다. 아내와 이혼 후 당시 4살 된 딸을 홀로 키우던 그의 나이 38세였는데요.
한창 연기에 눈을 뜨고 진정한 전성기를 누릴 즈음, 그렇게 배우 임성민은 슬하에 딸 한 명을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해야 할 나이에 간경화로 인해 유명을 달리 하셨습니다. 유가족으로는 초등학생 딸하나와 노모가 계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고 임성민님의 사례를 통해 새삼 증권분석과 재무설계의 필요성을 절감하였기에 이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간경화로 돌아가신 영화배우 故 임성민님은 많은 보험에 가입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과연 많은 보험에 가입하셔서 유가족들이 그 보험의 혜택을 충분히 받았는 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임성민님은 간경화로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면서도 남겨진 딸과 노모를 안심시키면서 '자신이 죽더라도 사망보험금이 10억은 나올테니 그걸로 딸 공부시키고 노모의 여생을 편히 보내면 된다.'고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자신의 보험이 어떻게 설계되어 있었는 지에 대해 평소에 무관심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간경화는 암(사망률30%)도 아니었으며, 재해사고(사망률 : 7~8%)도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암과 교통 재해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보장 구조 아래에서는 암 이외의 질병으로 인한 사망시에 대해 적절한 보험금이 설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월 68만원의 보험료를 내던 임성민님은 사랑하는 가족에게 3,800만원을 보험금으로 남겨주었습니다. 보험료로 납입하시는 금액에 비해서는 적절하지 못한 금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신보험의 진정한 가치는 사망의 원인과 이유를 따지지 않고, 보험금이 지급된다는 점이며, 이러한 부분은 가장 중요시하게 설정되어 있어야 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비슷한 금액으로 임성민님이 종신보험에 가입했다면(특약 배제시, 30세 가입), 약 8억원 정도의 일반 사망 보험금을 준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기타 적절한 특약을 추가하였더라도 최소한 5억원 이상의 보험금은 확보하였을 것입니다.
보험의 투자 이익은 아이러니하게도 불행한 사태가 발생해야지만 현실화됩니다. 최저의 보험료로 최적의 보장, 어렵지만 꼼꼼하게 체크해야 할 부분입니다.
귀찮아하거나 미루거나 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평소에 자신의 보장자산에 무관심하다가 막상 큰 일이 닥치면 자신이 믿고 있던 것과 다르다며 보험회사를 비난하거나 설계사를 욕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곤 합니다.
항상 큰 불행도 사소한 게으름이나 미루는 작은 습관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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