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향년 83세로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세계경영'을 내세우며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 최선봉에 서 왔던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김우중 회장의 별세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한 세대가 저물었다라고 생각하게끔 할 정도로 김우중 회장이 우리나라에 남긴 족적은 생각 이상으로 컸습니다.
김우중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한 지금 이 시점에 그에 대해서 호불호가 분명히 있고 그를 비판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나라에서 3대 경영인 즉 이병철 삼성 그룹 전 회장, 정몽주 현대그룹 전 회장과 함께 우리나를 떠받치고 있었던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고도의 성장 시대를 경험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를 상징하는 세 인물 중 한 명으로서 김우중 회장은 우리 많은 어른 세대에게 각인이 되었드랬습니다.
그러나 김우중 회장의 성공 신화는 그의 불법으로 인해서 훼손이 되어버렸고 17조라고 하는 천문학적인 벌금으로 인해서 그의 회사 대우그룹은 공중분해 되어버렸으며 그 자신은 베트남 등지에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숙환으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게 되자 선뜻 그를 비난하기보다는 그가 우리나라의 성장 신화를 상징하는 인물로서 그와 우리나라는 같은 배를 탔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자녀들이 분명히 아직도 성공 신화를 쓰고는 있습니다 그의 사위가 경영하는 이수그룹은 지금도 중견 기업으로 견실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김우중 회장의 대우그룹의 성공 신화는 그대로 몰락의 신화가 되어버렸고 기업이 불법을 저지르는 행동이 얼마나 나라까지도 위험하게 하는 행동인지에 대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에게 피해를 보았던 많은 사람들은 김우중 회장에 대해서 그렇게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맞이한 것 자체는 안타깝기는 합니다만 IMF가 터진 이유를 무조건 그에게 덮어 씌울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이 무조건 따뜻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김우중 회장은 숙환으로 별세하였습니다. 오랜 시간 평온한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김우중 회장의 자녀들은 이수그룹을 비롯하여 여러 기업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 이상 그에 대해서 할 말은 없지만 다만 다시는 같은 불법들이 우리나라에서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뿐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대우그룹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희미해질 때 즈음 김우중 회장의 숙환으로 인한 별세 소식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할 꺼리를 주는 것 같습니다.
김우중 전 회장은 아내 정희자 여사 사이에 3남 1녀를 뒀다. 김 전 회장 부부는 그중 장남 김선재 씨를 특히 예뻐했다. 김선재 씨는 1990년 24살의 꽃다운 나이에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죽은 아들의 이름을 따 아트센터의 이름을 지을 만큼 각별한 아들을 잃은 후 정 여사는 우연히 TV에서 아들과 닮은 사람을 목격한다. 그가 바로 배우 이병헌이다.
정 여사는 배우 유인촌의 주선으로 이병헌 쪽에 먼저 연락해 양자로 삼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이병헌은 ‘이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은 같은 것’이라며 흔쾌히 수락했다고 전해진다. 그 인연 때문인지 이병헌은 대우통신 컴퓨터, 대우자동차의 티코 모델로도 활약했다.
죽은 아들과 닮아서… 김 회장 부부의 아들이 된 이병헌
김 전 회장 부부와 이병헌의 인연은 20년이 넘게 지속됐다. 이병헌은 김 전 회장 부부를 자주 찾아가 아들노릇을 톡톡히 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회장 부부는 이병헌을 친 아들처럼 여겼다. 정 여사는 이병헌이 먼 곳으로 촬영을 갈 때 직접 반찬을 만들어 전해주며 마음을 썼다.
이병헌이 지난 2015년 모 걸그룹 멤버, 여성 모델에게 50억을 주지 않으면 음란패설이 담긴 동영상을 퍼뜨리겠다는 협박을 받았을 때다. 이병헌 부부는 사건이 발생했을 무렵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 했다. 한 매체는 이병헌 부부가 미국에서 김 전 회장 부부를 만났다고 보도했다.
이병헌은 양부모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쏟아내며 그동안 힘들었던 심정을 토로했다. 김 전 회장 부부는 이병헌에게 “앞으로 부인에게 더 잘해주라”고 다독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후 이민정이 출산 후 아들 준후 군을 출산했을 때도 김 전 회장 부부는 누구보다 기뻐했다고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의 죽음으로 이병헌은 아버지같은 존재를 잃게 됐다. 살아생전 양자로 인연을 맺었던 이병헌이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어떻게 배웅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김 전 회장은 1967년 자본금 500만원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한 이후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기까지 30여 년간 승승장구하며 재계에 '대우신화'를 써 내려갔다.
10일 대우세계경영연구회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1936년 12월19일 대구에서 아버지 김용하와 어머니 전인향씨 슬하 5남 1녀 중 4남으로 출생했다. 한국전쟁(6.25 전쟁) 중 부친이 납북되면서 어린 나이에 홀어머니와 함께 가족의 생계를 돌보는 어려운 형편에도 고학으로 경기고, 연세대학교 상경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60년 중견 무역업체인 한성실업에 입사한 그는 1963년 국내 최초로 섬유제품 직수출을 성사시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후 김 회장은 31세 때인 1967년 대우실업을 창업하며 사업가의 길을 걷는다.
1975년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연 이후 1976년에는 한국기계, 1978년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대우조선해양) 등의 부실기업을 인수, 단기간 내 경영정상화를 이뤄 한국의 중화학산업화를 선도했다.
같은 시기 에콰도르(1976년)에 이어, 수단(1977년), 리비아(1978년) 등 아프리카 시장 진출을 통해 해외사업의 기반을 다졌다. 1978년 대우실업은 국내 기업 중 수출 1위를 달성하는 등 수출 최전선에서 활약으로 빠르게 성장하며 신흥재벌로 주목받았다.
1982년 주식회사 ㈜대우를 설립하며 재계 4위에 총수에 오른 그는 1983년 대우자동차 출범, 대우전자의 대한전선 가전사업부 흡수와 대우통신 설립, 1984년 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경남기업 계열 편입, 1988년 ㈜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프랑스 롱위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등 자동차·중공업·조선·전자·통신·정보시스템·금융·호텔·서비스 등 전 산업의 세계진출을 본격화했다.
1983년에는 국제상업회의소에서 3년마다 수여하는 이른바 '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기업인상을 아시아 기업인 최초로 수상했다. 1989년 출간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6개월 만에 100만 부를 돌파하며 최단기 밀리언셀러 기네스 기록을 달성해 세간에 화제가 됐고, 1992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고려할 정도로 대중의 인지도도 높았다.
1999년 해체 직전, 대우는 41개 계열사와 600여 개의 해외법인·지사망, 국내 10만명, 해외 25만명의 고용인력을 토대로 해외 21개 전략국가에서 현지화 기반을 닦고 있었다. 당시 자산총액은 76조7000억원, 매출은 91조원(1998년)에 달했다.
그러나 1997년 불어닥친 외환위기의 파고를 끝내 넘지 못하며 대우그룹 해체와 함께 그도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1999년 8월에는 대우마저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사실상 그룹이 해체됐고, 그해 11월 김 회장은 회장직에서 사퇴했다.
이후 분식회계 및 횡령 등의 혐의를 받은 그는 검찰의 수사를 피하기 위해 출국해 약 5년 8개월간 도피 생활을 하다 2005년 입국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2006년 11월 열린 항소심에서 분식회계 및 사기대출, 횡령 및 국외 재산 도피 혐의로 징역 8년6개월,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받았고 상고를 포기해 확정됐다.
2007년 말 대통령 특사로 사면을 받은 뒤 베트남 등 해외에서 주로 거주해왔다.
대우세계경영위원회 관계자는 "김 회장은 지난해 8월 말 베트남 하노이 소재 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 청년사업가) 양성 교육 현장을 방문하고 귀국한 이후 건강이 안 좋아져 통원 치료를 하는 등 대외활동을 자제해오다 12월 말부터 증세가 악화돼 장기 입원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이 참석한 마지막 공식 행사는 지난해 3월 22일 열린 '대우 창업 51주년 기념식'이었다.
유시민이 정치활동을 중단한 이유? 딸 유수진의 영향. 부인 한경혜 러브스토리~놀라운 수재라는! (0) | 2022.08.19 |
---|---|
탤런트"공룡선생" 조문정 씁쓸한 소식..25살, 연예계 교통사고 비보 끊이질않네 xxx (0) | 2022.08.19 |
김정민의 고백! 우리는 살며, 아프고 후회하지요! 남자돈보고 사귀니간 그러치20살 차이. (0) | 2022.08.19 |
류시원 이혼 이유가 가.정폭.력 그리고 바람을, 어떻게 저렇게 끔.찍.한 사건을 벌이고도 재혼을 하려고 하는 여자가 있었을까? (0) | 2022.08.19 |
70년대 쌍둥이 여성듀오 ‘바니걸스’ 언니 고정숙씨 씁쓸한 소식을! 정말 가슴아픈 사연입니다... (0) | 2022.08.19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