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환은 1965년 아역 성우로 데뷔한 뒤 드라마와 영화, 공연에 출연할 뿐 아니라 MC, 라디오 DJ, 교수 등 다양한 분야에 열정을 쏟으며 종횡무진 활약해왔다.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때 돌연 미국으로 떠난 그는 브로드웨이 공연들을 보며 영감을 받아 '난타'를 제작,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며 최고의 공연 제작자 반열에 올랐다. 이후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개·폐막식의 총감독을 맡으며 전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으며 또 한 번의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평창 동계 올림픽 성공 이후 송승환에게 청천벽력 같은 시련이 찾아온다. 이날 송승환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시력 저하로 실명 위기에 놓인 것에 대해 고백했다.
송승환은 "잘 보이던 휴대폰 글자가 안보이더라. 처음에는 어느 정도 보이던 얼굴이 점점 안개 속으로 들어가니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고 두 번째 한 일은 아무래도 의술의 힘을 빌려야해서 눈을 고치기 위해서 병원을 찾아다니는 일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서울의 여러 대학 병원을 찾아다니고 미국과 일본에 유명하다는 병원도 찾아갔다. 눈을 고치기 위해서 병원을 찾아다니는 일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결과는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안 보이는 상태에서도 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보지 못하면 들을 수 있는 그런 기술을 찾아다니면서 습득하고 좀 더 문자를 크게 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봤다. 화면을 크게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기구도 개발하고 보지 못해도 들을 수 있는 IT 기술을 찾아다니면서 습득했다"며 잘 보이지 않아도 스스로 긍정의 힘으로 핸디캡을 극복했다고 전했다.
송승환은 "아무도 모르게 딱 한번 나 혼자 밤에 시원스럽게 한번 울고 그 다음부터 편하게 살고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어 송승환은 "집사람도 내가 눈이 안 보인다는 것을 가끔 잊어버린다. 눈에 반창고를 붙여야 하나 싶기도 하다. 집사람이 심청이 노릇을 열심히 한다. 가끔 뺑덕어멈이 될 때도 있다"고 농담도 했다.
송승환은 "그냥 받아들여 달라. 크게 걱정 안 해도 된다"며 "어두워지면 많이 안 보이지만 형체는 알아볼 수 있다. 자주 다니는 곳은 문제가 없는데 처음 가는 곳에서는 조심하고 있다"며 그를 걱정하는 이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면서 "눈이 나빠지던 게 진행이 멈췄다"며 "안타까워할 것 없다.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살면 된다. 이왕 닥친 일이라면 그냥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게 좋은 것 같다"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송승환은 "어릴 때 집안도 여러 번 망해봤고 어려운 일을 좀 많이 겪었다. 긍정적인 마인드는 경험으로 얻은 결론"이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그는 "1965년에 아역 성우로 시작했다. 제가 어릴 때 부모님이 사업에 실패하셔서 좀 어렵게 사는 집안이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소년 가장이 됐던 거다"고 털어놨다.
굳이 속내를 드러내자면 알려지지 않은 그의 가족사도 그의 뉴욕행을 부추겼다. 당시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던 그는 아파트를 네채나 가지고 있을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지만 유학을 떠나기 2년 전 부친의 사업 실패로 졸지에 친구 집에 얹혀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어릴 때부터 집에 빚쟁이들이 찾아오는 게 예사였어요. 돈을 많이 번 것은 사실이지만 매번 아버지 사업에 쏟아붓고 나니까 어느 순간 허무해지더라고요. 아등바등 돈을 버는 것보다 젊을 때 더 많이 보고 느끼는 게 더 큰 재산이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든 거죠. 남들은 연예인인 제가 돈 싸들고 유학간 줄 알지만 그때 저와 집사람이 가져간 돈은 3천달러가 전부였어요.”
당장 벌지 않으면 하루 끼니가 걱정스러웠던 뉴욕생활. 아내 박찬실씨는 네일숍에서 일하고 그는 노점상에서 시계나 신발을 팔기도 했다. 두 사람의 유일한 낙은 여윳돈이 생기면 브로드웨이로 달려가 연극을 보는 것이었다.
“하루는 노점에서 신발을 팔고 있는데 젊은 여자가 ‘혹시 송승환씨 아니세요’하고 묻더라고요. 맞다고 했더니 측은한 눈으로 ‘참 용감하시네요’하는 거예요. 잘나가던 연예인이 벼룩시장에서 신발을 팔고 있었으니 그럴 법도 하죠. 그래도 내 처지가 비참하거나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신발을 판 돈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고, 남은 돈으로 아내와 극장으로 달려가 연극 한편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더 행복했으니까요.”
송승환: "하지만 저는 제 처지가 비참하거나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그렇게 신발을 판 돈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고, 남은 돈으로 아내와 연극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더 행복했으니까요."
올해로 결혼생활 18년째. 그에게 아내는 ‘혈육 같은 존재’다. 힘든 시기에 많은 위로를 받은 것.
“아는 친구 카페에서 우연히 집사람을 만나고 3년쯤 연애를 했는데, 그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제가 많이 힘들어했거든요. 힘들 때 만난 사람한테는 푹 빠지잖아요. 그리고 뉴욕에 있을 때도 아내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제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죠.”
확실히 송승환은 보통 사람과는 마인드가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송승환 아내 박찬실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당시 인기 많았던 송승환과 결혼(정확하게는 약혼)을 하면서 네일아트 종업원으로 일하리라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와 아내 사이에는 아이가 없다. 남들은 아이없이 사는 이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지만 정작 송승환은 “아이 없이 사는 결혼생활이 익숙하고 편하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일부러 아이를 갖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그냥 살기로 했어요. 지금은 집사람이나 저나 아이가 없는 생활에 익숙해 있죠. 그래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안한 것 같아요. 아이가 있어봤어야 좋은 점도 알고 그럴 텐데 말이죠. 하하하.”
이 때문에 한때 '송승환 이혼', '송승환 재혼' 등의 루머가 퍼지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송승환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네요.
두 사람은 성격이나 취향이 매우 비슷하다. 그다지 내성적이지도 외향적이지도 않고, 하고 싶은 말은 꼭 하고야마는 성격이다. 영화를 좋아하고 관람객으로서 공연을 보는 느낌도 비교적 잘 통하는 편이다. 그는 아내하고 있을 때는 일 이야기를 일체 하지 않지만 해외출장 때면 아내를 동반하는 것으로 점수를 딸 줄 아는 ‘괜찮은 남편’이기도 하다.
아마 송승환은 조강지처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와 함께 송승환은 "지금 편안하게 잘 살고 있다. 일하는데 큰 지장이 없다.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되고, 형체는 다 알아볼 수 있다. 어두워지면 많이 안 보이지만 낮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있으니까 자주 다니던 곳은 문제 없다. 처음 가는 곳에서는 조금 조심한다"며 미소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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